우리사회는 손상을 가진 사람들이 장애인으로 살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시설로 격리시켜 장애인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우둔한 생각을 했고, 가족주의적 구조는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 하면서 장애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켰다. 또한 장애가족이 붕괴되고 해체되는 것을 외면하는 모순된 정책을 펴기도 했다.

특히 지적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부의 정책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인식에도 문제는 있었다. 바보이고 모자라니깐 친구하지 말라고 어린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켰고, 아이를 키울 수 없으니 연애도 결혼도 해서는 안된다고 잔인한 낙인을 주기도 한 것이다.

어디 우리나라만 그랬을까? 북미나 유럽 그리고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그런 과정속에서 당사자들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으며 70년대부터는 변화를 모색하였고, 일본 또한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활발하게 변화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적장애인의 지역생활과 가이드헬퍼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중에서 오사카 다음으로 지적장애인의 가이드헬퍼가 시작된 곳은 동경도에 있는 다찌까와시(立川市, 2000년)였다. 일본의 자립생활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곳으로 자립생활센터가 다찌까와시로 부터 위탁을 받아 가이드헬퍼 파견사업을 실시하였다.

그곳에 소속되어 있던 필자는 2일간의 이론교육을 받았으며, 반나절은 자립생활센터의 당사자 직원이 동행한 당사자와의 외출교육, 그리고 면접을 통과 하여 가이드 헬퍼의 자격증을 땄다. 면접은 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과 당사자직원이 했으며, 유학 전에 지적 장애인시설의 근무경력을 갖고 있던 필자는 요주의 인물로 주의 깊게 관찰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성인이면서 지역에서 사는(그룹 홈 포함) 대부분의 지적장애인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보호작업장에 다닌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가이드헬퍼을 이용하여 데이트도 하고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한다. 1개월에 32시간(교토시의 경우)의 가이드헬퍼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외출은 가이드헬퍼와 이루어 진다.

이 글을 읽으면서 혹시 중증의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보호작업장에 다니거나 가이드헬퍼와 외출하는 것이 불가능 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착각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얼마 전에 빵 만드는 지적장애인의 보호작업장(빵공장)에 다녀왔다. 시각과 지적장애의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던 분이 커다란 냉장고의 문을 닦고 있는 것을 봤다. (그 사람의 담당은 냉장고 문을 닦는 것) 정해진 냉장고문을 다 닦으면 다른 곳을 닦도록 직원이 이동시켜주었다. 닦다가 지겨우면 앉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또 한 분은 휠체어에 앉아서 하루 종일 밀가루가 묻어 있는 쟁반을 닦고 있었다. 다 닦으면 직원이 다른 쟁반을 가져다 주고, 하기 싫으면 휠체어로 여기 저기 다니기도 했다.

가이드헬퍼 또한 마찬가지이다. 처음 몇 번만 부모로부터 이용자의 특징과 주의 상항을 주의 깊게 들으면 된다. 그리고 외출의 빈도가 높아질 수록 헬퍼와 이용자 사이에 의사소통의 방법이 생기게 된다. 때론 부모가 미쳐 발견하지 못한 것까지 헬퍼가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지적 장애인의 자기결정능력은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 지적장애인은 판단능력, 경제관념, 의사소통의 불편등으로 인해서 타자(비장애인,전문가)로부터 배제 당해 왔다. 또한 지적장애인은 판단능력의 저하와 결정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자기결정의 영역안에서도 배제되어 왔다. 그래서 지적장애인은 자립생활이 힘들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적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싫어, 좋아” 라는 표현은 비교적 확실히 하는 사람이 많다. 다만 그 의사표시가 “단어”가 아닌 경우나 말을 한다고 해도 잘 전달 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지적 장애인의 언어를 이해 하려는 쪽에서 나름대로 이해하는 방법과 깊은 관심을 가진다면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또한 지적장애인이 자기결정해야 할 때 될 수 있으면, 가장 쉬운 단어로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하면 된다. 그렇게 설명을 한 뒤 어떤 결정을 할 것인지 본인에게 들어 보면 되는 것이다.

정보제공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북미에서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지원으로 정보제공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예를 들면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때 통역과 대필이 계속 따라 다닌다. 또한 집을 얻거나, 출산과 자녀교육등 생활에 필요한 지식이 필요할 때 다양한 정보제공을 실시한다. 최근 일본에서도 다양한 상황에서 지원자의 정보제공을 중요시 하고 있다.

중증의 신체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이 24시간 필요하듯이, 시각장애인에게 음성서비스와 점자 그리고 지팡이가 필요하듯이, 지적 장애인이 자기결정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바르게 읽어주고 정보를 제공해주는 가이드헬퍼가 서포트를 해주면 된다.

예를 들면 음식점에서 “무엇을 먹을래요?”가 아니라 “비빔밥도 있고, 국수도 있고, 떡볶이도있는데 무엇을 먹을래요?” 라든가 “시청을 가려고 하는데 2호선을 타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1호선을 타는 것이 좋을까요?” 등의 대화를 시도하면된다. 그러면서 다음 단계 그 다음 단계로 대화를 진행해 가고 본인이 자기결정하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즉, 정보제공이라는 말은 관계에서 오는 정보를 정확히 전달되도록 지원하고, 어떤 것을 결정 할 때도 많은 것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정보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파더나리즘(paternalism)적 사고 방식에서 탈피

온정적비호주의라고 일본에서 번역되기도 한 파더나리즘은 “너는 잘 모르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라든가 “이렇게 하는 것이 너를 위한 일이야” 라는 말로 타인 즉 지적장애인을 콘트롤 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의사소통이나 자기결정에 있어 비장애인들보다 많은 시간적 노력이 필요한 지적장애인을 대신해서 그들을 위한 일이라고 앞서서 판단하고 결정해서는 않된다.

지원체제를 명확히 하자

자립생활센터에서 자립생활을 하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지원체제를 만드는 일이다.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고 항상 상담을 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맴버는 헬퍼를 파견하는 사업소의 담당자(자립생활센터의 직원), 가이드헬퍼, 신체장애인이다. 이들은 지적장애인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로 평상시 어떤 지원이 필요하고, 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떤 식으로 지원할지를 결정하면서 자립생활을 서포트한다.

중증지적장애인에게 헬퍼를 파견하기

가이드 헬퍼를 신중하게 뽑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요가 아직 많지 않기 때문에 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보조인으로서 신뢰를 받고 있는 사람을 먼저 파견하는 것이 좋다. 자립생활센터의 활동보조인은 기본적으로 자립생활이념과 당사자 주체라고 하는 기본자세가 있기 때문에 당사자의 감정과 의사표현을 잘 받아들이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해서 뽑은 가이드 헬퍼라면 무조건 신뢰를 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다.

가이드헬퍼에게 그날의 특징과 이동경로등을 기록하게 한다. 이 기록지(노트)는 공개하여 다른 가이드헬퍼들이 자유롭게 이용자에 대한 정보와 특징 그리고 위험상황에 대한 대처를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기록은 몇 개월 후 일년 후에 당사자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알 수 있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중증장애가 있다고 하더라고 의사표현이나 감정표현을 항상 하고 있다. 가이드 헬퍼와 외출 후에 갑자기 표정이 어둡거나, 고집을 피우는 등 평상시와 다른 행동한다면 그것이 신호인 것 이다.

부모가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모는 평생을 지적 장애가 있는 자녀를 대신해서 당사자처럼 살아 왔다. 그래서 얼굴만 봐도 당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앞서서 판단을 하고 문제를 해결까지 해버린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부모가 개입을 해버리면 헬퍼와 이용당사자가 친해지고 신뢰를 갖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리며, 이중적 메시지를 받은 당사자는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필자는 지적장애인 시설에서의 경험 그리고 지적장애인의 자립생활지원을 해오면서 그들의 가능성을 많이 봐왔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잔인하게 그들의 가능성을 무시해왔고 외면해왔는지도 알게 되었다. 경험했던 순간순간의 것들을 다 글자화 시키지 못해서 많이 안타깝다. 그렇지만 그들에겐 가능성과 힘이 있음을 우리가 믿어주고 부족한 부분을 서포트 해 줄때 처음으로 그 가능성과 힘이 보일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98년 일본의 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보조를 시작했고, 99년부터 한국과 일본사이에서 동료상담,연수,세미나 등의 통역을 통해 자립생활이념과 만났다. 02년 부터는 활동보조서비스코디네이터로 일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장애인운동과도 만났다. 그렇게 10년을 죽을 만큼 열심히 자립생활과 연애하고 사랑을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본에 있다. 다시 한번 일본의 정보를 한국에 알리고 싶어 이 공간을 택했다. 일본의 장애인들 이야기(장애학)와 생존학(장애,노인,난치병,에이즈,죽음,윤리)이야기를 이곳에서 풀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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