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살랑살랑 봄바람이 귓불을 간지럽힌다. 춥고 어둡고 길었던 겨울이 가고 봄이 온 것이다. 겨울은 절망이고 봄은 희망이라 했던가. 그러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차례로 오게 마련이지만 인생여정에 절망과 희망은 서로 자리다툼을 하게 마련이다. 영원한 절망도 영원한 희망도 없기 때문이다.

독일 북부 아름다운.초원에서 백은영씨. ⓒ이복남

그러나 절망의 시간을 되도록 줄이고 희망의 시간을 길게 좀 더 길게 만들어 내는 것은 각자의 몫이 아닐까 싶다. 절망은 짧게 그리고 긴 희망으로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백은영(31)씨는 경남 밀양시 부북면 덕곡리에서 2남 2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60)와 어머니(56)는 밀양에서 농사를 지으시다가 그가 10살 무렵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부모님은 대신동에서 조그마한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일요일이면 가끔 전 가족이 밀양을 다녀오곤 했다.

중학교 2학년이던 1991년 5월 19일. 여름이 저만큼 다가오고 있던 화창한 일요일이었다. 그날따라 친구 하나가 그의 고향마을 밀양을 가보고 싶어 했다. 언니와 친구와 함께 세명의 소녀는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밀양으로 갔다. 외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잘재잘 조잘조잘 놀다보니 하루해가 짧았다. 그러나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부산가는 기차를 타기위해 밀양역으로 달렸다.

알프스 산자락에서 언니와 함께. ⓒ이복남

저녁 7시쯤이었던가. 오뉴월 해가 길어 아직 어둠이 내리지는 않았다. 무궁화호에 가까스로 올라탔는데 한숨을 돌리고 보니 열차는 출발했다. 그런데 창밖을 내다보니 어라? 기차가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닌가.

“언니야 이거 서울 가는 기차다”

세 소녀는 너무 놀라 자리를 박차고 나왔는데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제일먼저 플랫홈에 한쪽 발을 내디뎠는데 다른 쪽 발이 미처 따라오지 못했다. 그는 기차바퀴 밑으로 빨려들어 갔고 이어서 내린 언니와 친구는 다행히 무사했다. 언니가 비명을 질렀다.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기차에서 내린 것 밖에는 기억이 없습니다”

비명소리에 사람들이 달려왔으나 육중한 기차바퀴는 이미 그의 몸을 지나간 뒤였다. 사람들은 피투성이로 작은 새처럼 파르르 떠는 그의 조그만 몸뚱이를 선로에서 끌어 올렸다. 모두가 쯧쯧 혀를 차고 절래 절래 고개를 저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라 누군가가 거적때기를 가져와 덮었다. 채 피어 보지도 못한 15살 가녀린 꽃송이는 그렇게 지려는 모양이었다.

‘베체헬공동체’에서 통역하는 백은영씨. ⓒ이복남

“안 돼요! 빨리 병원으로 가야해요”

언니는 울부짖었다. 빨리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눈물로 애원을 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허둥지둥 병원으로 옮겼다. 그는 왼팔 전체와 오른손 팔꿈치 부분이 없다. 어떻게 된 것일까.

“뒤따라 내린 언니가 보니까 바퀴가 왼팔을 지나갔는데 왼팔이 그대로 잘리더래요. 그 순간 오른팔로 왼팔을 감싸더래요. 그러자 다음 바퀴가 오른팔을 끌고 간 거죠”

병원에서는 보호자를 찾는데 부모님에게 연락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그날 그와 언니는 기차를 타고 밀양으로 갔었다. 부모님이 장사를 하기 때문에 1톤 트럭이 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 둘은 트럭을 타고 갔고 돌아올 때도 부모님과 함께 외할머니 댁을 나와 그들은 밀양역으로 갔고 부모님은 트럭을 타고 부산으로 출발했었다.

네델란드 헤이그 평화궁 앞에서 언니와. ⓒ이복남

“밀양에 삼촌이 계셨는데 경찰서에 아버지의 차 넘버를 알려주고 아버지를 찾아 달라고 했대요”

부산으로 가는 1톤 트럭은 전부 검문 대상이었다. 상춘객들이 돌아가는 일요일 저녁시간인데 난데없는 검문에 차량은 엄청 밀렸다고 한다. 경찰은 수산검문소에서 아버지의 차를 발견하였다. 부모님은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경찰이 묻기를 “혹시 딸을 기차로 보냈습니까?”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딸에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었단다. 소식을 전해들은 외할머니는 기절을 해서 넘어가고 다른 지인들은 오열하고.

“엄마는 아주 침착했대요”

부모님이 병원에 도착해보니 왼팔은 잘려 나가고 오른팔은 다 부서져 짓이겨졌는데 오른팔을 살리고자 하니 의사는 자신이 없다며 부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부산으로 가는 도중에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은 목숨만이라도 살려 달라고 애원 할 수밖에 없었다.

*백은영씨 이야기는 2편에 계속.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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