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장애인 차별이야기②

내가 앞을 보지 못한 것은 40년 정도입니다. 내 나이 마흔이니,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한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누구나 뒤를 보지 못하니, 그러한 면에서 모든 사람과 나는 동일합니다. 어쨌든 나는 태어날 때부터 캄캄한 세상에서 살았고, 지금도 그러한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어둠 속에서 혼자놀았습니다. 주어지는 음식을 먹었고, 아침이었는지 저녁이었는지 모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았습니다. 나는 몸이 원하는 대로 잠을 잤고,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습니다. 언제가 따뜻한 태양의 햇살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나는 방에서 나와 길거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굉장히 큰 소리들이, 알 수 없는 소리들의 나이 귓전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목으로 나는 나온 것입니다. 집에서 길거리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나는 이를 ‘엑소더스’(Exodus , 히브리인들이 430년간 이집트에서 가나안 땅으로 나오게 된 사건을 일컫는 말)라고 일컫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을 알 수 없었지만, 길거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라는 것은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더 많은 거리를 다니고 싶었습니다. 사실 많이 다니기는 했지만, 그렇게 많은 곳을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나의 가족들은 나에 대하여 당황했던 것 같았습니다. 나에게 들려지는 소리는 안타까움이었고, 한숨 소리였습니다.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내뿜는 소리, 나에게 많이 해주지 못해서 땅을 벅벅 긁는 소리, 부모가 떠난 이후의 나의 삶을 걱정하는 소리, 나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하면서 어찌하지 못하는 주저함의 소리. 이러저러한 소리들만이 나를 둘러쌀 뿐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소리는 세상 사람들의 소리로 대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식구들은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은 것 같았습니다. 가족들이 나에게 허락한 일은 사람들이 많이 오고가는 그곳, 태양이 밝게 비취는 그곳에 가만히 앉아있도록 한 것입니다. 나는 아침이 되면 그곳으로 나아갔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맨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 집에 들어왔을 때, 식구들이 즐거워하며 대화하는 내용을 통해서 어림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돈을 벌게 된 것이지요. 나는 가만히 앉아있었을 뿐입니다.

사실 가족들은 나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가족들의 손에 이끌려 이곳저곳을 다녔던 것은 눈을 치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습니다. 내 나이 마흔이 되었습니다. 흔히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하지요. 이제 누군가가 눈을 고쳐주겠다면 나는 속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이제 이 자리, 40년간 지켜왔던 이 자리에서 천직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도울 수 기회를 주면서 상부상조의 정신을 가지고 살겠습니다.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40년간 이 자리를 지켜온 나의 얼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이미 사람들 사이에 스타(Star)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스타란 나는 그들을 모르는데, 그들이 나를 알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하루하루 인기스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이 북적대는 거리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기다리며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로 내 앞에서 몇몇 남자들의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그들의 대화내용이 ‘나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이 40년간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저 사람이 시각장애인이 된 것은 누구 죄 때문입니까? 저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저 사람의 부모 때문입니까?" 저들은 내가 앞을 보지 못한 것이 ‘죄’(sin, 罪)때문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죄라니? 무슨 죄 때문이지? 아니 저 인간들은 나의 시각장애인 됨을 죄 때문이라고…. 그런데 왜 저런 이야기를 내 앞에서 하는 것이지? 저들은 내가 앞을 보지 못하니 소리도 들을 수 없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무지합니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 무지 많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나를 듣지 못하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이들, 나는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인지장애(認知障碍)라고 합니다. 저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앞을 보지 못하는 나 보다 더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게다가 인격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저런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몰인격적인 모양입니다. 인격적인 자세가 없어요. 결국 사람됨의 기초가 없는 것이지요. 일단 저들을 이렇게 규정하고 나니 나의 마음에 평화가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논쟁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바로 그 때 한 분이 내 앞에 오셨습니다. 그 분은 아마도 논쟁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혀 방향이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분은 나도 처음 듣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 저 사람이 시각장애인이 된 것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분은 무엇인가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내 눈에 무엇인가를 발랐습니다. 후에 안 것이지만, 진흙을 침에 이겨서 내 눈에 바른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실로암 물에 가서 씻으라"

40년간 암흑 속에서 살아온 나였습니다. 눈을 고치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해본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이제는 눈을 고쳐준다고 하면 다 사기꾼으로 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구요? 나는 빛을 보는 일을 포기하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냥 이대로 사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었죠. 단지 수입만 좋다면야. 그러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그 말씀은 웬지 명령으로 들렸습니다. 그 명령은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나는 그 즉시 가서 씻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또다른 이유는 밑져야 본전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쯤 해보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설령 빛을 보는 일이 생기지 않아도 상처받을 나 자신도 아니었었고, 상처받지 않을 자신도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실로암 물가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앞을 보고,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계속해서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본래 시각장애인었느냐? 가짜가 아니냐? 혹시 쇼를 한 것이 아니냐? 나를 끌고 이리저리로 다녔습니다. 결국 나의 부모님에게까지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이 친구가 전에 앞을 보지못했던 당신 아들 맞소?" 내가 어떻게 해야 저들에게 증명해 보일 수 있을까요? 다시 시각장애인으로 돌아가볼까요? 사람들은 앞을 보지 못했던 나의 불편에 대해서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았습니다. 내가 어디를 가고자 할 때, 돌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도랑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낭떠러지는 어느 쪽에 있는지..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끔 나 혼자 힘으로 가다가 넘어지고 다치면 사람들은 한마디씩 하곤 했습니다. "집에 가만이 죽치고 있기나 하니 왜 돌아다녀?"

종종 회당(오늘날의 교회)에 가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회당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내 옆에 앉는 것을 기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수군수군거렸습니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앞을 보지 못할까?" 그들 앞에서는 나는 죄인이었을 뿐, 인간도 아니었습니다. 나의 불편, 뒤에서 수군거리면서 내뱉는 인격적인 모욕들. 나는 수많은 차별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소리와 외침으로 부터 나를 차단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앞으로 보고있고 빛을 응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논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장애인의 차별, 장애인의 불편, 장애인의 구체적인 삶, 장애인의 인격에는 관심도 없이 탁상공론만 일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나에게는 커다란 장애였습니다. 장애인 차별. 커다란 건물, 커다란 직장, 커다란 교회, 커다란 시설에서만 일어나는 일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걸어다니는 길 가에서 모퉁이,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와 일상생활 권역 안에서 매일매일 일어납니다. 커피숍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식당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문구점에 들어가기 힘듭니다. 은행에도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 입니다. 나의 주변에 독버섯 처럼 퍼져있는 차별을 방치하고, 장애를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사회를 방기하면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미치겠습니다.

나는 나에게 빛을 보게하신 그 분 -- 사람들은 예수님이라고 부릅니다.--이 하신 말이 기억납니다. "너희가 본다고 하니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차라리 보지 않았다면 죄가 없었을 텐테..'

그렇습니다. 차별을 없애겠다고 하면서 차별을 방치하는 이 법을, 이 정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상에서 내려와서 당신들이 살고 있는 동네로 들어가세요. 그곳에서 장애를 경험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이계윤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과 사회사업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밀알선교단과 세계밀알연합회에서 장애인선교현장경험을 가졌고 장애아전담보육시설 혜림어린이집 원장과 전국장애아보육시설협의회장으로 장애아보육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예수와 장애인, 장애인선교의 이론과 실제, 이삭에서 헨델까지, 재활복지실천의 이론과 실제, 재활복지실천프로그램의 실제, 장애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펴내어 재활복지실천으로 통한 선교에 이론적 작업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이 칼럼난을 통하여 재활복지선교와 장애아 보육 그리고 장애인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자와 함께 세상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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