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이다. 모든 장애인이 오늘 하루 사람대접을 받으며 지낼 수 있는 시간이다. 일 년 내내 모른 척으로 일관하면서 오늘 하루 온갖 사탕발림을 쏟아내며 장애인도 당당하게 살아가라 열변을 토해낸다.

대한민국이 들썩인다. 장애인들은 모두 세상으로 나와 오늘 하루 즐거운 시간을 보내란다. 가는 곳마다 척척 손과 발이 돼 줄 테니 여기서도 와라, 저기서도 와라 야단법석이다. 공원에서, 체육관에서 무슨 행사를 그리 거창하게 벌이는지 왁자하다.

그리고 다른 한켠에서는 장애인도 국민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든 시설은 다 걷어 치워라. 시설에 갇혀 지내는 삶을 거부하며 사회인으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는 뜨겁다. 독립과 자립을 위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과 직업훈련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은 여전히 하늘로 오른다.

장애체험이랍시고 휠체어에 앉아 몇 분 끙끙대고는 훌훌 털고 일어나 힘들다는 촌평(寸評)으로 모든 상황이 끝이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나 몇 장 박고서, 생색은 태산같이 낸다. 공공기관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환경, 학교에서 들러리나 서다 눈칫밥을 한 광주리 이고 와야 하는 현실은 외면하고 그것으로 그만이란다.

‘장애인’이니, ‘장애우’니 하면서 호칭만 바꾸면 대접이 달라지는지 모를 일이다. 복지의 범위를 넓힌다고 큰소리치더니만 찔끔찔끔 주는 듯, 마는 듯하며 신문과 방송에는 마치 당장 모든 것이 변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무엇이 달라지는 것일까?

법은 만들어 져도 제대로 사용될지 의문이고, 잘못된 것을 고쳐 달라 요구하면 장애가 벼슬이냐며 가자미눈으로 흘겨보기 일쑤다.

부르는 이름은 같은데 그 날을 기념하는 형식은 하늘과 땅이다. 대통령은 맞춤형 복지니, 직업과 교육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고 훈훈한 이야기를 하고, 시장은 너른 마당에 보란 듯 판을 벌여 웃음을 팔고 있다.

다른 한 쪽에서는 시설비리 척결하라고 장기농성을 벌이고, 차별철폐를 외치며 행진을 하고, 장애인가정의 정신적, 경제적 파탄을 막기 위해서는 가족지원이 절실하다고 목청을 돋우지만 누구하나 귀 기울여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 하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두 가지 행사를 보면 답답하다.

장애라는 현실은 같은데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 방송과 언론은 온 나라가 장애인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양 호들갑을 떨지만 이내 사라지고 말 발등의 관심일 뿐이다.

여전히 삶의 질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이 높아가지만 장애인 당사자나, 그 가족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책상머리에 앉아 마치 연필을 굴려 나누어 주는 듯 이것을 요구하면 찔끔, 저것을 요구하면 또 찔끔대면서 온갖 생색은 다 낸다. 그것이 왜 필요하고 어떤 효과를 가져 올 것인지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와글와글 시끄러우니 하나 던져주고, 또 우르르 몰려가 아우성을 놓으면 다시 하나 던져주는 형국이다 보니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못하고 늘 미봉책으로 당장의 것을 넘기고 보자는 식이다.

장애인의 날에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여긴다면, 그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을 가져야 한다고 여긴다면 체계적인 고민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런 고민 속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당장 모든 것들을 이루어 내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하나, 하나 그 위에 쌓아가자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밭갈이 하듯이 한 삽으로 뒤집어엎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계획을 수립하는 작업을 하면서 그 안에 진정으로 그것을 가져야 할 사람들의 참여공간을 열어두고 시간이 좀 걸려도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장애인을 보며 하는 말 중 ‘지랄’이라는 말이 있다. 장애인이 무엇인가 해 보려고 노력을 하는 모습을 비하하는 말이다. (간질을 앓고 있는 경우 일어나는 발작을 칭하는 말이 지랄, 혹은 지랄병이다) 장애인의 날 벌어지는 관(官)주도의 행사를 보면서 느끼는 기분도 그와 다를 바 없다. ‘아주 돈 지랄을 해대고 있구나. 돈 못써 안달이고, 사진 못 찍어 안달이 나서 생 지랄을 하는구나’.

이왕 하는 행사라면 진정으로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들어보려는 노력은 보여야 하지 않을까. 낮은 곳으로 내려와 귀 기울일 줄 아는 관리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도 한마디]제28회 장애인의 날에 바란다!

[제10회 에이블 퀴즈]장애인차별금지법 특집

1963년 서울 생. 지적장애와 간질의 복합장애 1급의 아이 부모. 11살이면서 2살의 정신세계를 가진 녀석과 토닥거리며 살고 있고, 현재 함께 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장애라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장애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지내온 것이 무지로 연결된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 장애라는 것이 일반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으며 그런 생각은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갈 즈음에 환상이란 것을 알게 돼 지금은 배우며 지내는 중입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