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의료체계가 발달된 시대에도 병원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돈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돈이 있음에도 병원 가는 것이 두려워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언어장애인들이다.

그렇다면 청각언어장애인들은 왜 병원가기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의사는 점쟁이가 아니다. 제일 처음 병원에 가면 의사는 문진 즉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를 물어본다. 그런데 청각언어장애인은 자신의 증세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아픔이나 통증 또는 증세를 표현하는 어휘가 부족해서 농아인 뿐 아니라 수어 통역자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의료수어 1권 표지. ⓒ이복남

그래서 의사가 진료를 하고 주의사항을 말해주어도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더 어렵다. 처방약을 주면서 식후에 세 번 복용하라는 설명을 듣고 한꺼번에 세 첩을 다 복용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40대 후반의 농아인 남자는 대퇴골수술을 해야 했다. 수술하기 하루 전에 콘택트렌즈와 털니를 뽑아야 한다는 설명을 해 주었는데 그 사람이 알아듣기는 자신은 콘택트렌즈도 사용하지 않고 틀니도 하지 않기 때문에 눈알을 뽑고 이를 몽땅 뽑아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는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죽이는 것으로 알고는 벌벌 떨었다는 경우도 있다.

여성의 경우 부인과 수술을 하게 되면 음모를 제거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도 왜 털을 다 깎아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겁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병이 위중하다고 보기 때문에 대부분이 수어 통역자가 통역을 해 주었음에도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러니 통역자도 없는 작은 의원 같은 곳에서는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청각언어장애인들은 병원가기를 꺼려해서 정말 위급상황이 아닌 다음에야 그냥 참고 견디는 바람에 오히려 병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프다는 아픈 표정으로. ⓒ이복남

청각언어장애인은 청력을 상실하여 소리를 통한 정보교환이 불가능하므로 수어와 시각으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게 되므로 잘못하면 오류나 엉뚱한 오해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이 시각적인 것에서 정보를 습득하기 때문에 심지어는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의 이름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에고, 이를 어찌 설명해야 하나. 필자의 경우만 해도 나를 아는 대부분의 청각언어장애인이 내 이름은 잘 모르지만 <여자> <장애인대장(?)> <뚱보> 정도로 자기네들은 다 통하는 것 같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 즉 표식은 이마의 주름이다. 그렇다면 현 이명박 대통령은 뭐라고 부르고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한쪽 눈의 눈꼬리가 아래로 약간(?) 쳐져 있다. 그래서 농아인 세계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눈꼬리가 아래로 쳐진 동작으로 통한단다.

헌법 제 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지만 정작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농아인의 경우 질병이나 사고 시에 의료 관계자들과 의사소통의 한계로 인해 적절한 의료서비스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병원과 의료인 ⓒ이복남

언어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 생성 발전 소멸한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무수한 말들이 생겨나고 또 잘 사용하지 않는 말들은 죽어서 없어지기도 한다. 청각언어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수어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수어의 경우 단어의 빈약함으로 표현에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의료수어의 경우 의학은 날로 발전하고 그에 따라 병도 함께 발전(?)하는 것 같은데 그 병과 치료에 대해 정확하게 표현할 수어가 마땅치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어에서 X레이는 손가락을 서로 엇갈려 포개는 가위표를 썼지만 농아인들의 병원 이용이 늘어남에 따라 ‘X레이’라는 용어가 새로 생겼는데 영어 <알파벳의 X>(1지를 구부리고) <가슴> <복사>이다. 참고로 일반적으로 손가락을 셀 때는 엄지부터 첫째 둘째 셋째로 세지만 수어에서는 둘째손가락 즉 검지가 1지가 되고 엄지는 5지가 된다.

위에서 예로 든 것처럼 ‘약은 하루에 세 번 식후에 복용하라’고 한다면 한꺼번에 세 첩을 다 먹어 버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므로 수어로 할 때는 아침 먹고 1번, 점심 먹고 1번, 저녁 먹고 1번으로 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궁근종이 있어서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아기> <집> <수술> <버리다> 해야 한다. 코에 병이 나서 코를 풀지 마라의 경우에도 <코> <풀지마라>로 한다면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하게 된다. 이때도 <코풀다> <하지마라> <위험>으로 해주어야 한다.

언제부터 아팠습니까? ⓒ이복남

저자는 의료 수어 통역 시 지켜야 할 사항을 꼼꼼히 체크하고 있는데 질병의 경중을 떠나 신체적 아픔을 호소하는 농아인과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신속하되 온화한 표정으로 성심껏 통역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치료과정에서 알게 된 내용은 절대 누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농사회에서는 쉽게 알려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까딱 잘못하면 예기치 못한 일로 오해를 사는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다. 의료수어는 생명과 직결되는 표현들이다. 손가락 하나라도 잘못 펴거나 쥐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강주수 춘해대학 겸임교수, 손경화 춘해대학 교수, 김동국 영산대학교 교수 등의 공동 저작인 “의료수어”는 1권(280여 단어와 210여 문장), 2권(360여 단어와 140여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30여 년 동안 수어를 배우고 연구하면서 가르치는 강주수씨는 그동안 축적된 자료들을 가지고 공동저자들과 연구하면서 새로운 의료수어들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의료수어를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결실을 보게 된 “의료수어”를 누구든지 필요한 사람은 배우고 익혀서 청각언어장애인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구입문의 ▶ 하나출판사 051-441-5911, 강주수 010-9412-5933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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