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삭개오란 사람입니다. 세리장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지요. 키가 작은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키가 작아서 고민이 되는 것은 어떤 누구보다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민을 할 뿐,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키가 작아서 귀염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동네 어른들이 특별히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키가작다는 것은 나에게 큰 핸디캡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키가 크고 늘씬한 사람만을 좋아하는 외모지상주의(外貌至上主義)는 나에게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학교에 가도 높은 책상과 걸상은 나에게 힘든 과제가 되었습니다.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과 계단 사이의 높이는 나에게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교단의 강단 높이와 칠판의 높이는 또 하나의 짐이었습니다. 문의 손잡이와 문고리의 높이는 닿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러저러한 어려움은 학교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면접을 중시하는 취업문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벽이었습니다. 늘씬하고 잘 생긴 사람들 사이에서 면접관 앞에 선다는 것은 그 자체로만으로도 고통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싶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눈에도 차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에게 있어서 나는 귀여운 남자였을 뿐, 사귀어야 할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살아야 했습니다. 작던 크던, 그것은 나의 인생이었습니다. 결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나의 삶이었습니다.

나는 힘들게 공부했습니다. 사실 키 큰 사람 중심의 사회에서 내가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공부하는 일이 열쇠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세무사 시험에 응했습니다. 이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직업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나는 세무사(稅務士, 흔히 稅吏라고 하지요)로서 열심히 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유대나라에서 세리는 존경받는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세리라는 직업은 우리나라 유대를 점령하고 있는 로마정부의 명을 받아서 우리 동족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내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키도 작은데, 세무사라는 직업 자체도 동족에게 손가락질 받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일에 개의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은 세무사라는 직업이고, 적어도 현재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나의 몫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직업인으로 나는 동족에게 나아갔습니다. 전에는 키가 작다고 무시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세무사라는 직업 때문에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비아냥거리고 노골적으로 왕따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합법적으로 세금을 거두러갈 때에도 폭언 하는 일을 즐겨했고, 불법으로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징수할 때에도 불법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것 보다 키가 작은 것이 마치 더 큰 죄인 것처럼 그들은 나를 경멸하는 자세로 대하였습니다.

나는 이러한 현실을 맞이할 때마다 점점 더 강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강해질 뿐 아니라 정의(正義, Justice)를 실천해야겠다는 자부심까지 들게 되었습니다. 나의 눈빛은 빛나기 시작했고, 내가 하는 일에 강한 소명감까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점차 세무사 직원이라는 직책 이상으로 주어지는 힘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세금을 걷는 일에 워낙 단호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뒤에서는 나를 비난하고 욕을 했을지 몰라도 나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뒤에서 나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일에 대하여 나는 괘념(掛念)치 않았습니다. 나의 뒤에서 말하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이라고 간주하면 되었습니다. 로마 정부는 나를 신뢰하기 시작했고, 나의 실적에 따라 나는 승진을 거듭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기 보다는 키가 작다고 차별(discrimination)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내가 잘 되는 것뿐이었습니다.

나는 드디어 한 지역이 세무소장(稅吏長)이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세리장으로 승진하던 날, 나에게 뇌물(그들은 축하 선물이라 했습니다)을 가지고 온 수많은 사람들 특히 나보다 키 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키가 작은 나보다 더 낮아지려고 기다란 다리를 굽히느라고 애를 먹었습니다. 물론 나에게 뇌물을 가져다 준 사람들, 다 저의(底意)가 있는 사람들이었죠. 불법으로 세금을 탈취하고, 뇌물로 자기 이익을 내려는 사람들이었죠.

신기한 것은 이렇게 출세하고, 세무소장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허리를 굽히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금을 낼 수 없거나 소액의 세금을 내는 사람들, 그리고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들은 항상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나는 그들의 따뜻함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나를 ‘한 사람’으로 만나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장애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정직한 사람들. 그들 안에는 키가 작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냥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인간 삭개오’ 그뿐이었습니다.

나는 나에게 허리를 굽히면서 굽신굽신거리는 사람들보다 나에게 허리를 굽히지 않는, 게다가 나는 키가 작은 삭개오가 아니라 인간 삭개오로 맞이한 그들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세금을 걷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주로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세금을 내야 할 사람이었고, 스스로 세금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독촉장을 발부하고, 머리를 써가면서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색출하여 쫓아가면서 세금을 받아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나의 창고에는 사람들이 바친 뇌물로 재산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물론 나의 정당한 수입도 재산증식에 기여했습니다. 나는 뇌물을 가져다 준 사람을 비웃으면서, 창고에 늘어난 재산으로 변해가는 나를 응시하고, 그리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Jesus)라는 분이 우리 마을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분은 훌륭한 말씀을 하고, 한센 환자도 고치고, 나면서부터 장애인 된 사람도 고친다는 분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소문도 있었고, 포도주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예수라는 그분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우리 동네를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나는 수소문을 한 끝에 예수님이 말씀을 하신 그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집을 찾았습니다. 입구에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나는 비집고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은 나를 사람들은 밀어냈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좋지 않았습니다. 나는 예수님에게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작은 키가 아니라 사람들이 장애(障碍)였습니다. 나의 접근을 방해한 것이 사람들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키가 작다는 사실을 안 때부터 사람들은 나에게 장애물이었습니다. 키가 작은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장애물이었습니다. 키가 작은 사람과 함께 하려 하지 않은 사람들의 차별적인 태도가 장애물이었습니다. 키가 작은 사람을 빼고 키 큰 사람들끼리 함께 했던 모습이 장애물이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이 멀리서라도 예수님을 보기로 다짐했습니다. 나는 가까운 곳에 있는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간신히 뽕나무 위로 올라간 나는 멀리서 예수님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삭개오야"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분에게 찾아가려는 나의 노력을 실패했지만, 오히려 예수 그분이 나에게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나는 감격했습니다.

갑자기 나는 나무 밑으로 뛰어 내려갔습니다. 어떻게 내려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예수님에게 다가가 절했습니다. 그 분은 나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너의 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면 좋겠다" 나는 "물론이지요 대 환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 찾아온 첫번째 손님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나는 그 분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토색한 것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고, 세금을 엉터리로 거둔 것이 있으면 다 내놓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나는 키가 작아서 차별을 받았습니다. 내가 받은 차별은 도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진짜 나에게 차별이고 장애가 된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요, 사람들의 생각이요, 사람들의 태도였습니다.

이제 나는 차별을 없애는 사회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작은 힘이지만, 나보다 더 차별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차별이 없는 사회, 단지 인간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로 다짐했습니다. 차별 없는 사회를 향하여 나의 발걸음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계윤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과 사회사업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밀알선교단과 세계밀알연합회에서 장애인선교현장경험을 가졌고 장애아전담보육시설 혜림어린이집 원장과 전국장애아보육시설협의회장으로 장애아보육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예수와 장애인, 장애인선교의 이론과 실제, 이삭에서 헨델까지, 재활복지실천의 이론과 실제, 재활복지실천프로그램의 실제, 장애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펴내어 재활복지실천으로 통한 선교에 이론적 작업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이 칼럼난을 통하여 재활복지선교와 장애아 보육 그리고 장애인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자와 함께 세상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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