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첫날인 지난 11일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철환 활동가. ⓒ에이블뉴스

4월 11일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이 시행되었다. 7년 가까이 장애인들이 투쟁 속에서 눈물과 땀으로 만들어낸 법률. 오늘을 맞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기분은 어떨까하는 생각에 나는 장애인은 아니었지만 아침부터 가슴이 설렜다.

출근 길, 나의 설렘과 다르게 평상시처럼 길거리는 조용했다. 며칠 전부터 방송과 신문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에 대한 토막뉴스를 내보내고는 있는데, 저들은 그 보도를 어느 정도 가슴에 담고 있을까?

사무실로 향하는 버스, 운전기사가 양희은씨와 강석우씨가 진행하는 여성시대를 틀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란 단어가 흔들리는 차안에서 흐릿하게 들인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방송을 주의 깊게 들었다. 방송에서는 장차법 시행 첫날이라며 장차법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보도프로그램에서 대하던 딱딱한 투가 아닌, 양희은씨와 강석우씨의 입담을 실은, 그러면서 자못 진지한 목소리로 장차법의 내용을 소개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장차법을 상세히 소개하였다. 그리고 이 코너를 통하여 방송되었던 장애인과 관련한 차별 사례를 소개하며 장차법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문득, 양희은씨의 노래 ‘아침이슬’이 생각난다.

오전 11시 30분, 2시간 정도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장차법 시행에 따라 장애인 방송접근 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마치고 모 신문사 기자와 청각장애인과 함께 서울시내 한 동사무소로 향했다. 장차법 시행 첫날, 공공기관에서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지원에 대한 준비를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이다.

현행 장차법 제20조에는 ‘개인‧법인‧공공기관은 장애인이 전자정보와 비전자정보를 이용하고 그에 접근함에 있어서 장애를 이유로 제4조 제1항 제1호 및 제2호에서 금지한 차별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되어있다.

동행한 청각장애인이 동사무소에서 민원서류를 요청했다. 청각장애인임을 알리기 위하여 창구 앞에서 수화를 했다. 그러나 그 직원은 용건이 무엇이냐며 말로 물어본다. 청각장애인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직원이 메모지에 말과 함께 질문사항을 적는다. 그래도 청각장애인은 직원이 쓴 질문내용의 판독이 덜 되었는지 다시 써달라고 손짓으로 요청한다. 그러기를 5분, 우여곡절 끝에 민원서류 한 통을 발급받았다.

나는 안내인에게 청각장애인 민원이이 왔을 때 수화통역사가 지원 안 되느냐고 물었다.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 동사무소 관할 구청에는 수화통역사가 배치되어 있으며, 수화통역서비스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는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관할 구청으로 갔다. 배치된 수화통역사에게 구청 내 관공서에서 서비스 현황을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공교롭게 통역사는 다른 통역 때문에 외출한 상태였다. 동행한 청각장애인은 동사무소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원서류를 발급받기 위하여 장애인전담 창구로 갔다.

청각장애인은 쪽지에 무엇인가 적었다. 직원은 무슨 민원이 필요하냐며 말을 한다. 청각장애인이 수화를 했다. 그 순간 그 직원은 양팔로 엑스(×)표시를 하며 수화를 못한다는 제스처를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좋았다. 그 후로 청각장애인이 수화를 더 하자 난감해하는 직원의 표정, 점점 일그러지는 얼굴….

동행한 기자가 수화통역사를 요청하자 주변에서는 부랴부랴 수화통역사를 찾았다. 연결이 안 되는지 안내대 직원이 안절부절못한다. 청각장애인은 청각장애인대로, 직원은 직원대로 서로 의사소통이 안 돼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참다못한 청각장애인이 민원 발급 신청을 포기하고 창구에서 돌아섰다.

그 직원은 돌아서는 청각장애인을 부를 생각도 없이 기다리는 다른 민원인의 업무를 처리한다. 민원인이 민원을 처리 못하고 돌아서는데 가타부타 한마디도 없이 모른 척 하는 것은 직무유기 아닌가? 수화통역사가 없어 청각장애인 민원 업무가 마비된 구청, ‘문화․복지․환경 1등 구’라는 문구가 적힌 번호표를 만지작거리는 청각장애인이 안쓰럽다.

우리가 방문했던 구청과 동사무소, 그 곳에는 청각장애인의 권리가 없었다. 그리고 장애인 전담 창구 직원임에도 청각장애인의 문제는 수화통역사가 다 알아서 하니 모른다는 태도, 청각장애인을 대하는 기본 소양이 전혀 안되어 있는 모습에서 장차법이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해본다.

구청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오늘 하루, 우리가 방문했던 곳 가운데 구청과 동사무소는 공공기관에서 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를 잘 말해주는 사례였다. 또한 앞으로 장차법의 올바른 시행을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과제를 던져준 곳이기도 했다.

장차법의 올바른 시행을 위하여 장차법의 내용을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시회의 구성원이라는 인식, 동등한 인격을 가진 보통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비장애인 사회에 자리 잡지 못한다면 장차법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장차법이 지향하는 사회통합 또한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오늘 나는 올바른 장차법 시행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품으며 하루를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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