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아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받아왔던 과제물이 생각난다.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묻는 문제가 있었다. "그야 당연히 국민이지." 엄마를 믿고 숙제를 해 간 아들은 다음날 "엄마 때문에 틀렸다"고 투덜댔다. 선생이 내놓은 정답은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어느 행사에서 사회자가 "우리 동네의 제일 어른이신 ○○○구청장님"이라 소개하는 것을 봤다. 그 자리엔 구청장 보다 연배가 높으신 분들도 많이 계셨고, 설사 구청장의 나이가 제일 많다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어른일 수는 없다.
사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언제나 시비가 있어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비를 가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만들었는데 많은 방법과 권력을 독점한 이는 주인이 되고, 별로 가진 것이 없는 백성은 종이 되었다.
민주사회란 예전의 주인과 종이 자리를 바꾼 것뿐이다. 다수결에 의해서!
역사는 진보하고 발전한다지만 우리네 의식은 아직도 몇 백 년 전의 왕정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선거 때만 되면 "여러분의 종이 되겠습니다"면서 허리를 굽실거리는 사람들. 하지만 당선만 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 이들도 바로 그들이다.
그렇게 주인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또 '그들의 (또 다른)주인'을 모시느라 민의는 안중에 없을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 공천과정만 봐도 그렇다. 권력에 맛을 들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어깨 너머로 구경만 한 사람들은 그걸 맛보기 위해 기를 쓰고 사생결단을 한다.
만일 모든 후보들이 다 그렇다면 정작 우리들의 가려움과 아픔은 누가 긁어주고 또 달래줄 것인가.
'쇠귀에 경 읽기'같지만 허리를 구부려 눈높이를 맞추는 자여야 한다. 국민들은 못 살겠다고 아우성인데 싸움질만 하다가 선거 때가 되면 멀쩡한 얼굴로 돌아와 다시 또 종이 되고 싶다며 비굴한 웃음을 흘리는 인물은 안된다.
'종노릇 한 증거를 한 번 대봐!'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지역 주민을 위해서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 한 번 내놔 봐라. 유권자들도 그들이 내놓는 증거라는 것들을 제대로 검증이라도 한 번 해보자.
섬김은 존중이고 사랑이다. 주인을 사랑하고 존중하여 잘 섬길 수 있는 종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이 기사는 부산일보(2008. 03.24.) "[총선 新희망사항] 난 이런 국회의원을 원한다"에도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