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들의 일반적인 평균 수명은 약 12~15년 정도 된다. 그럼 안내견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안내견은 다른 견들보다 수명이 짧다고 답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어렵고 혹독한 훈련 단계를 거쳐 평생 동안 시각장애인을 안내하고 다니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결국 수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답한다.

뭐 안내견들이 많은 수고를 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실제로 안내견들의 절제된 모습들, 예를 들면 출퇴근 시간의 붐비는 지하철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도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식당에서 맛있는 냄새 풍겨가며 고기를 굽는 회식자리에서도 미동 없이 엎드려 자고 있는 그들을 처음 보는 분들은 마냥 신기하게 여기거나 때로는 연민의 정마저 느끼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개가 사람 보다 낫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안내견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거나 한 마디씩 남긴다.

"개가 이렇게 참을성을 기르려면 얼마나 훈련을 받아야 됩니까"

"무슨 훈련을 받기에 도대체 이렇게 사람도 참기 힘든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습니까"

"안내견들은 오래 못 살죠"

"짖지도 못하고 얼마나 답답할까"

"참 힘든 일 한다. 다음 세상에서는 편한 곳에서 태어나라"

조금 비약하여 말하자면, 마치 안내견을 잘 훈련된 노예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조금 더 보태면 안내견 훈련사는 순종적인 노예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된 훈련을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그 안내견을 데리고 다니는 시각장애인은 다른 시각장애인에 비해 호화서비스를 받는 사람이다.

만일 위의 내용대로 안내견의 인생이 그러하다면 필자를 비롯한 모든 안내견과 함께 다니는 시각장애인들은 고귀한 한 생명에게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정말로 자신의 일을 스트레스로 여겨 수명이 짧아질까.

누구나 행복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산다. 행복이란 각자가 느끼는 주관적 감정이므로 다른 대상이 느끼는 행복에 대하여 쉽게 논할 수는 없다. 그런데 견들도 근본적인 맥락에서 보면 행복에 관하여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감정을 지니고 있음을 아는 이들은 많이 없는 것 같다.

요즘 동물을 다룬 TV 프로그램의 한 코너에서 애완견의 나쁜 버릇을 고쳐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제법 인기가 있는 듯하다. 사람만 보면 짖는 개, 어린 아이들만 골라 공격하는 개, 식탐이 많은 개 등 문제 행동을 보이는 개들이 줄줄이 나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불과 몇일만 전문가 손을 거치면 완전히 다른 개로 변모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이 문제들을 야기한 발단 배경은 비교적 간단한 곳에 있다. 주인들이 견들이 느끼는 행복을 잘못 해석하였기 때문에 결국은 문제 행동이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해 TV에 나왔던 문제견들의 행동이 좋은 쪽으로 변화된 것은 전문가가 그들에게 지속가능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행동목표를 알려주고 그들은 그에 상응하는 강화제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시 안내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10 마리의 훈련견 중 최종 안내견으로 선발되는 확률은 약 40%에 불과하다.

머리가 좋고 똑똑한 개가 안내견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안내견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보다 훈련 과정에서 자신의 일을 행복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낯선 환경에서도 편하게 적응하고, 누구에게나 적대감을 갖지 않으며, 어떤 유혹에도 침착성을 잃지 않는 등의 성격을 타고난 견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안내견 훈련의 기본은 가능성 없는 견을 훈련하여 완성시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바로 잠재력을 가진 견을 선별해 내는데 가장 큰 비중을 둔다. 이렇게 선별된 안내견 후보생들은 자신의 타고난 성품을 기반으로 하여 일을 수행하고 훈련사에게 정당한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으며 훈련을 소화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내견이 느끼는 최고의 보상은 무엇일까. 안내견은 자신의 임무를 다할 때까지 결코 주인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제나 자신을 보호해 주고 사랑과 애정으로 보살펴 주는 주인과 함께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최대의 행복으로 여긴다. 물론 무조건 같이 있다하여 행복하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시각장애인은 안내견의 안전한 안내를 통해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되고,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을 채워가며 인생을 즐기는 동반자와 같은 둘의 관계는 진정한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은 쾌락 순이 아니다’라는 본 글의 제목은 아래 내용 때문에 붙여졌다. 안내견이 짖지 않는 것에 대하여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한다. 어떤 사람들은 수술 때문이 아닌가 생각까지도 한다. 그러나 안내견 뿐만 아니라 모든 훈련견들에게 특별히 짖지 않도록 하기 위한 수술 등은 절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짖고 싶지만 참고 견딜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일반적으로 개가 어떤 상황에서 짖는가를 알면 쉽게 풀린다.

갓난아이들이 모든 감정(배고프다, 춥다, 놀고 싶다 등)을 울음을 통해 표현하듯이 개의 짖음은 자신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 속담에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했지만 그 떡이 지나치면 결국 버릇 나쁜 아이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라면서 자신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을 익히게 되고 이것이 곧 체계화된 언어이다.

견들도 마찬가지다. 짖을 때 마다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욕구를 해결해 주다 보면 모든 감정을 짖음을 통해 표현 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 문제를 야기한다.

안내견들은 생후 7주 때부터 퍼피워커(일반 가정에서 사회화에 도움을 주는 사람)의 손에 의해 교육을 받는다. 이 때 그들은 자신의 의사 전달을 짖음이 아닌 다른 가벼운 행동들로 표현하여 사람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도록 길들여지기 때문에 짖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가 짖는다는 것은 그 만큼 자신의 의사 전달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면 된다. 안내견이 음식물 또는 주변 냄새 등에 관심을 덜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절정의 쾌락 앞에서 행복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동적 행복감은 미래지향적이고 지속적일 수 없기 때문에 참다운 행복이라 할 수 없다.

안내견들은 1차적 기본 욕구들에 무조건 반응하여 얻는 순간적인 기쁨 보다 자신의 임무를 무사히 마친 후 시각장애인 주인의 진심이 담긴 칭찬 한 마디를 받을 때의 행복감을 즐길 줄 아는 녀석들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안내 견들을 연민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면 그들과 함께 다니는 시각장애인의 삶 역시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안내견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이 결코 무조건 복종하고 반복적 훈련에 의해 기계적으로 일만 할 줄 아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타고난 가장 최상의 능력으로 평가 받고 인생을 즐기는 행복한 프로페셔널이다.

자신의 한 평생을 시각장애인의 동반자가 되어 활동하면서 매 순간을 즐기는 당당한 안내견들의 발걸음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아름답게 보아주길 바란다.

선천성 시각장애로 특수학교(대전맹학교)를 나와 2002년 창원대학교에서 특수교육과 사학을 복수전공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첫 안내견 강토와 만나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수준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방의 열악한 현실에서 안내견 강토의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시각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일깨워 주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지난 2005년에는 삼성화재 공익광고에 출연하여 대한민국광고윤리대상을 수상하였고, 안내견에 대한 대중의식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 입사하여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홍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 및 안내견 인식개선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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