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남원의 일출 전경. ⓒ정재은

벌써 섬을 둥그런 모양으로 반쯤 돌았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북동쪽을 돌았으니 남쪽을 돌며 신비로움이 가득한 태고의 자연과 함께한다.

남동쪽 끝머리의 고즈넉한 시골동네 남원에서 아침 해를 맞이했다. 깜깜한 저녁에서야 도착한 시골 항구도시는 썰렁하기 그지없었지만 아침에 맞이한 남원의 해살은 힘차고도 정답기 그지없었다.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도 하루는 그렇게 일상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위미항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정재은

아침부터 길 떠난 자가 처음 맞이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위미항이었다. 노을이 함께한 항구는 아니었지만 외딴섬제주에서도 한참이나 외딴곳에 있는 작은 항구의 적막함은 또 다른 풍경화였다. 다음에는 꼭 오후에 도착하여 노을을 보리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도착한 곳은 태고의 자연의 신비 주상절리였다.

주상절리 전경. ⓒ정재은

제주사람들에게 지삿개라 불리고 있는 주상절리는 현무암질 용암류에서 나타나는 기둥모양의 수직절리이다. 다각형의 모양인데 용암이 흘러나와 급격히 식으면서 발생하는 기암석으로 태고 적 제주도의 왕성한 화산활동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특히 제주의 주상절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규모이고 그 폭이 1km에 이른다고 한다. 제아무리 뜨거운 용암이라도 냉정한 바다의 부서지는 가슴 살이를 이길 순 없었나보다. 신(伸)이 다듬어 놓은 태고 적 한은 그리도 파도에 부서지고 있었고 바다는 서슬 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바다로 물이 바로 떨어지는 정방폭포. ⓒ정재은

주상절리와 한 단지 안에 함께 위치한 정방폭포는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로서 높이 23m, 폭 8m, 깊이 5m에 이른다. 웅장한 폭포음과 쏟아지는 물줄기에 햇빛이 반사되면 일곱 색깔의 무지개가 푸른 바다와 함께 어우러져 신비의 황홀경을 연출한다.

중국 진나라 시황제가 '서불'에게 동양의 삼신산의 하나인 한라산에 가서 불로초를 캐어 오도록 하였으나 불로초를 찾지 못하고 정방폭포의 절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글을 새기고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고 서귀포라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된다고 한다.

해변을 끼고 높이 치솟은 절벽에는 노송이 바다로 나뭇가지를 드리워 넘어질 듯 서있으며 각종 수목이 울창하다. 차라리 바다 쪽에서 보았으면 더 장관일 텐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험한 계단과 현무암을 가로질러 기암괴석과 낙수(落水)의 장관에 한참이나 넋을 잃었다.

전설을 많이 담고 있는 외로운 섬, 외돌개. ⓒ정재은

서귀포 시내에서 약 2㎞쯤 서쪽에 삼매봉이 있고 그 산자락의 수려한 해안가에 우뚝 서 있는 외돌개는 바다 한복판에 홀로 우뚝 솟아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5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섬의 모습이 바뀔 때 생긴 바위섬으로 꼭대기에는 작은 소나무들이 몇 그루 자생하고 있다. 오르기에는 너무 위험한 기암절벽의 형태이며,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인다.

바다에 홀로선 기암은 바다만 바라보다 돌이 된 망부석인 듯 아련하고 쓸쓸해 보였건만 아마도 보는 이는 가슴에 담긴 빛깔에 따라 그 느낌도 다른가 보다 바위에 얽힌 전설도 여려가진데 다 그럴싸하다.

고려 말기 탐라(제주도)에 살던 몽골족의 목자(牧子)들은 고려에서 중국 명(明)에 제주마를 보내기 위해 말을 징집하는 일을 자주 행하자 이에 반발하여 목호(牧胡)의 난을 일으켰다. 최영 장군은 범섬으로 도망간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외돌개를 장군의 형상으로 치장시켜 놓고 최후의 격전을 벌였는데, 목자들은 외돌개를 대장군으로 알고 놀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여 장군석으로 불리기도 하며 할망바위로도 불린다.

제주는 자연의 섬이다. 제주의 유채꽃은 지금부터 4월중순까지 절정에 이른다. ⓒ정재은

한라산 밑에 어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는데, 어느 날 바다에 나간 할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할머니는 바다를 향해 하루방을 외치며 통곡하다가 바위가 되었다고 하는 필자의 느낌을 담은 전설도 함께한다.

그렇지만 이 서정적인 바위는 ‘대장금’이라는 세상풍파(風波)에 의에 알려지게 된다. 장금이가 제주의 유배시절에 지내던 곳으로 더 유명한듯하여 씁쓸한 마음을 달래야했다.

제주는 그야말로 화산의 섬 자연의 섬이다. 태고의 신비가 가득한 섬 제주는 하늘과 바다와 땅의 합작품이었다. 남쪽으로 가서 마라도를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나는 다시 위로위로 올라간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경기지사에 재직 중이다. 틈틈이 다녀오는 여행을 통해 공단 월간지인 장애인과 일터에 ‘함께 떠나는 여행’ 코너를 7년여 동안 연재해 왔다. 여행은 그 자체를 즐기는 아름답고 역동적인 심리활동이다. 여행을 통해서 아름답고 새로운 것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우리네 산하의 아름다움을 접하는 기쁨을 갖는다. 특히 자연은 심미적(審美的) 효과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정화시켜 주는 심미적(心美的) 혜택을 주고 있다. 덕분에 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장애라는 것을 잠시 접고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받아온 자연의 많은 혜택과 우리네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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