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 아이가 제 세상을 만들며 살아갈 수 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장애에 관해서는 관습적으로 배타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과연 이 아이가 제 생각을 표현하면서 혼자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일어난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어떤 장치도 없는 나라. 장애를 가진 사람의 고통은 오직 가족이 책임을 져야 하는 나라. 교육은 고사하고 문 밖으로 나가는 것도 힘든 사람들이 삶의 무게를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나라. 말로는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처럼 하면서 정작 무엇 하나 바꾸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에서 온전하게 제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일종의 분노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답답한 현실의 무게가 그렇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장애라는 것이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 된 나라에서 과연 미래를 만들어 갈 존재감을 느끼며 살아갈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무조건 개인의 인간승리에 초점이 맞춰진 언론과 방송의 기형적인 형태는 눈물의 감동을 선사하는 것으로 끝을 내고, 사회가, 국가가 나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 그나마 장애인들이 거리에 나서서 굶고, 노숙투쟁을 하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하나, 둘 만들어 가는 것에 만족을 해야 한단 말인가.

활동보조인은 중증장애인에게는 빛과 소금의 존재임에도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준비가 안 돼 할 수 없으니 기다려라. 교육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도 마찬가지로, 예산부족과 순차적으로 개선을 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 모든 요구에 장애인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주어진 여건에 맞춰 만들어 갈 생각을 하니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천편일률적으로 기다리라는 말이 전부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그토록 긴 세월을 기다림 속에서 살아 왔는데 또 얼마나 더 기다리란 말인가. 아이를 생각하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부모들이 죽고 나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절대 죽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절대 아파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목숨도, 몸도 제 것이 아닌 아이의 것이며, 세상이 아이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어 한순간의 여유로움도 맛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또 기다리라 한다면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고만 말을 한다면 과연 고개 끄덕이며 ‘당신이 옳소’라고 하며 기다릴 수 있는 것인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서민과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을 하면서도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당장의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지 못하고 가진 자들의 주머니를 불리는 것에 급급해 하면서 '국익'임을 내세워 소외된 자, 노동자, 서민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간특한 행위를 보면서도 두말도 없이 기다릴 것이라 여기는 것인가.

이 아이들에게 희망은 무엇인가. 심어 줄 수 있는 희망은 누구의 몫이란 말인가. 복지 최우선이라 말을 하면서도 정작 누려야 할 사람들의 복지에는 눈 감아버리고, 제 잇속만 차리는 저들을 믿고서 우리가 얼마나 더 기다리기만 해야 한단 말인가.

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죽어 관속에 들어가서도 기다려야만 한단 말인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얼마만큼을 기다려야 하는지 속 시원하게 이야기 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슨 전설의 고향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기다리면 다 이루어 질 것이라는 말이 타당한지부터 따져봐야 할 일이다.

사회가 유지되는 것 중 가장 주요한 것이 개인의 몫과 국가의 몫이 적절하게 섞여서 하나의 무언가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은 개인의 몫은 점점 늘어가면서 국가의 몫은 그만큼 줄어들고 있으니 이 기형적인 형태를 어떻게 깨트려야 할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모든 공간에서 차별이 일어나고, 소외되고, 배제되는 일이 일상다반사인데 누구하나 나서서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비전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아닐지….

장애인은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망부석이 아니다. 장애인도 하루하루 각자의 일상이 존재하며, 그것들을 따라 남들과 같이 하루를 살아가는 존재란 말이다.

복지부장관 후보의 ‘복지병’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앙적인 믿음이 부족해’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복지현실이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으니, 더없이 답답하기 짝이 없다. 모두들 교회에나 열심히 다녀야 하는지….

1963년 서울 생. 지적장애와 간질의 복합장애 1급의 아이 부모. 11살이면서 2살의 정신세계를 가진 녀석과 토닥거리며 살고 있고, 현재 함께 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장애라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장애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지내온 것이 무지로 연결된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 장애라는 것이 일반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으며 그런 생각은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갈 즈음에 환상이란 것을 알게 돼 지금은 배우며 지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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