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은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

다니다 보면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심심치 않게 마주친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 청력이 매우 뛰어나 남들이 들을 수 없는 멀리 있는 소리도 잘 듣는다.

- 후각이 예민하여 주변 냄새를 남들보다 잘 맡는다.

- 기억력이 매우 좋아 한번 가본 곳의 길 또는 어떤 내용을 들려주면 모조리 암기한다.

- 목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거나 모습을 그릴 수 있다.

마치 초능력자가 된 것 같다.

그럼 위에 나열한 내용들 중 몇 가지의 진실을 간단하게 밝혀보자.

시각장애인이 정안인보다 멀리 있는 소리를 잘 듣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생활 속에서 시력 대신 청력을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소리를 구분하는 변별력은 상대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즉 어떤 소리를 시각장애인과 정안인이 같이 들으면, 시각장애인은 이 소리의 특징을 세분화해서 생활에 필요한 단서로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를 더 잘 듣는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다.

예를 들어 어떤 건물에서 박수를 치거나 큰 소리로 말을 하면 그 공간 안에서 소리가 울리는 정도가 느껴지고, 이를 단서로 자신의 현재 위치와 주변 공간의 넓이 등을 대략적이나마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은 눈과 마찬가지로 귀 역시 소리의 입체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주변 사물에 반사되는 소리만으로도 그 크기와 거리 등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각장애인의 기억력에 대해서도 대체로 과대 해석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주변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 분이

"발자국을 세어 가며 다니기 참 힘드실 텐데 정말 기억력 대단하세요" 라며 극찬을 하신

적이 있다. 또 한 번은 터미널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기사 분께서 근처 지리를 잘 모르시고 헤매시기에 "방지턱 지나서 바로 왼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라고 말씀드리자

마치 엄청난 기억력 소지자를 만났다는 듯 보지 않고서도 어떻게 그 모든 길들을 외울 수 있느냐며 놀라워하시는 바람에 오히려 머쓱해졌던 기억이 난다.

흔히 익숙한 일을 할 때 '눈 감고도 한다'라고들 하지 않는가! 시각장애인으로 생활하다

보면 주변 환경을 파악하기 위해 나름대로 조직화하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데,

특히 앞으로 다닐 길에 대해서는 청각, 후각, 촉각 등의 나머지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여 환경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를 찾기 위해 힘들게 발걸음 수를 외기보다는 흰지팡이나 발의 감각을 이용하여 지면이 꺼지는 곳을 찾거나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 가지 감각의 장애는 다른 감각을 구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이 역시 시각장애인이라 하여 모두 다 가능한 것은 절대 아니다.

다양한 환경과 접촉하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여러 단서들을 조직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하는 개인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선천성 시각장애인들은 본능적인 감각으로 경험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일정 수준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편한

방식으로 정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습관이 생겨버리는 경우가 있어 이를 바로 잡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여기서 바람직하지 못한 습관이란, 주변 공간을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박수를 치고 고개를 흔든다던가, 손으로 주변 물체들을 치면서 다니는 등의 행동을 말한다.

반면 후천성 시각장애인들의 경우에는 평소 의존도가 높았던 시력의 상실로 인해 미처 다른 감각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적응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므로 시각장애인 복지관이나 맹학교 등과 같은 재활 코스가 마련되어 있는 기관으로 부터 짧게는 4개월 길게는 3년 이상의 훈련을 받는 것을 권장한다.

이와 같이 시각장애인이 사회 환경에 적응하여 생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특히 보이던 사람이 실명하여 재활에 성공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각장애인의 능력을 과대해석하는 만큼 안내견의 능력 역시 과대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안내견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정안인 뿐 아니라 시각장애인들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다시 안내견에 대한 일반적 오해들의 예를

몇 가지만 들어본다.

- 안내견 손잡이만 잡고 있으면 목적지까지 다 알아서 간다.

- 사람 말을 다 알아듣고 행동한다.

- 주인한테 해를 가하려는 사람이 나타나면 용감히 공격하여 물리친다.

이건 정말 헐리웃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슈퍼독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에 그런 능력을 모두 지닌 개는 없다. 물론 안내견이 익숙한 길은 알아서 안내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시각장애인 스스로 방향 전환을 위한 지시 정도는 해 주어야 한다. 또한 안내견이 방향 제시어 '앞으로, 멈춰, 왼쪽, 오른쪽, 계단 찾아, 횡단보도 찾아'나 ‘앉아, 엎드려, 서’ 등과 같은 기본적인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단어 자체를 알아듣는다기 보다는 음성언어에 담겨 있는 분위기와 톤, 주인과의 감정 교류에 의해 행동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또한 조금이라도 공격적인 성향이 있으면 안내견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과격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듯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에 대한 여러 오해와 편견, 잘못된 정보들은 그들이 사회에서 정안인과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으로 작용해 왔다. 이제 앞으로 전개될 글에서는 이와 같이 잘못 알려져 있는 정보들을 하나하나 바로잡아가는 것에 주력하고자 한다. 미력하지만 내 글이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에 대한 오해를 풀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선천성 시각장애로 특수학교(대전맹학교)를 나와 2002년 창원대학교에서 특수교육과 사학을 복수전공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첫 안내견 강토와 만나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수준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방의 열악한 현실에서 안내견 강토의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시각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일깨워 주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지난 2005년에는 삼성화재 공익광고에 출연하여 대한민국광고윤리대상을 수상하였고, 안내견에 대한 대중의식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 입사하여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홍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 및 안내견 인식개선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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