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한 오락프로그램에 이런 게임이 있었다. 두 명의 출연자의 눈을 가린 후 서로의 양 볼에 물체를 대어 어떤 것인지를 맞추는 게임이다.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낯선 촉감을 느낀 순간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쉽게 놀라고 때로는 공포감마저 느끼며 소리를 질러 댄다. 눈을 뜨고 다시 그 물체를 확인하면서 호들갑 떨던 자신의 행동에 어이없어 하는 것으로 이 게임은 마무리 된다.

그렇다면 왜 같은 물체인데도 눈을 가린 상태에서는 낯설음을 느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물건 전체의 윤곽을 순간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특히 선천맹의 경우에는 동물을 만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경향이 많다. 시각장애인이 동물의 전체적 형상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면 낯설게 느끼지 않겠지만 상대적으로 경험의 양에 제한이 있는 경우라면 위의 눈 가리기 게임처럼 시각장애인 역시 눈을 가린 정안인과 별반 다름없는 감정을 느낀다.

여러 시각장애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안내견과 함께 다니고는 싶지만 개가 무서워서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갖고 개를 만져보게 하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개들과 무척 친했다. 내가 여덟 살이 되어 맹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 집은 충남 공주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 위치하고 있었다. 여느 시골집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 역시 여러 가축들을 키웠다.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녀석이 몸이 제법 컸던 잡종견 암컷 멍멍이다.

시각장애로 또래 아이들과 제대로 뛰어놀거나 어울릴 수 없어 혼자 놀 때가 많았던 내게 멍멍이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러나 멍멍이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더 큰 이유는 녀석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와 나를 대할 때의 태도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나와 뛰어 놀 때에도 녀석은 적당히 내가 쫓아가서 잡을 수 있는 거리에서만 도망 다녔고 절대 위험한 곳으로 나를 유도하지 않고 익숙한 공간에서만 놀곤 했다. 뿐만 아니라 목줄을 잡고 있노라면 천천히 보폭을 맞추어 집 근처를 안내해 주기도 했던 것이다.

기특하게도 녀석은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행동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멍멍이는 나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어린 꼬마아이의 심술궂은 행동을 받아주는 듬직한 형도 되어주는, 우리는 그런 친구였다.

가끔 강토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어릴 때 키우던 멍멍이가 환생하여 다시 내 품으로 온 것 같다는 영화 같은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아무튼 그 녀석과의 만남 이후 내게 있어 개는 언제나 친근한 존재가 되었다. 즉 나의 어린 시절의 경험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 셈이다.

다양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이처럼 시각장애인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경험이란 단순히 감각기관으로부터 전달되는 자극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전체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특히 호기심이 많은 시각장애 어린아이들에게는 이러한 다양한 경험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

시각장애인에게 경험의 기회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연령, 시력의 정도, 기타 감각의 활용 수준 정도를 고려하여 그에 적합한 형태와 방법으로 설명 또는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잘못된 방식으로 경험하게 되면, 오히려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각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안내견을 설명할 때에는 안내견을 만지고 있는 이 순간을 가장 행복하게 생각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한다. 훗날 그 아이들이 훌륭히 커서 어릴 적의 좋은 기억을 되살려 언젠가 다시 안내견학교를 찾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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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시각장애로 특수학교(대전맹학교)를 나와 2002년 창원대학교에서 특수교육과 사학을 복수전공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첫 안내견 강토와 만나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수준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방의 열악한 현실에서 안내견 강토의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시각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일깨워 주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지난 2005년에는 삼성화재 공익광고에 출연하여 대한민국광고윤리대상을 수상하였고, 안내견에 대한 대중의식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 입사하여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홍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 및 안내견 인식개선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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