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당당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당당해져야 한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궁금해지는 것이 생긴다. 왜 장애아 부모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당당해지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당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일까?

당당해 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에게, 무엇으로부터, 왜 당당해지라는 것인지….

환경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제공되고 있지만 장애인들은 늘 그 모든 사람에서 제외되는 통에 스스로 격리되거나 가족이나 타인에 의해 격리되는 일이 많다. 당장 학교에서의 생활을 보더라도 학교에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지내느냐가 중심에 서야 하지만 학교에 들어간 것 자체가 이미 모든 문제들을 해결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부모들까지도 이런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인식이 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고 그런 인식은 당연하게 제공되어야 할 기본시설의 설치에 대해서 눈을 감게 된다. 있으면 좋은 것이고 없으면 알아서 하라는 식의 ‘배 째라’는 막무가내 발상이다. 여기에 장애아 부모들의 침묵은 암묵적인 동의를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스스로 아이의 권리를 포기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고 또 다른 권리를 팽개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당당해지라는 것일까.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이 숨기거나 혹은 개인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별도로 강연을 통해 교육을 한다는 것이 영 마뜩찮다. 부모가 아이에게 당당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보냐. 그런데도 꼭 장애아 부모에게만 유독 강조하면서 되풀이 말하는 것은 왜일까.

모든 사람들은 사람 그 자체로 이미 동등하다고 말을 하면서 당당해져야 한다고 강조를 한다면 어딘가 기울어 져 있어 그러한 것이 아닐까. 무엇이, 어디서 기울어 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당당해져야 한다고 말을 하면 듣는 사람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전혀 모르던 세계를 접한 것 같은 표정으로 다짐을 하듯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자기 자신의 모습이 아닌 아이의 장애를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장애가 삶의 굴레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아이의 삶에 얹혀 간다는 것이지 자신 없이 살아간다는 뜻은 아니니 당당해지라는 말을 들을 이유는 없다. 아이의 장애를 죄인 된 마음으로 받아 안아 그러는 것일까.

사람들은 말을 한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존재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장애인은 여기서도 모든 사람의 범주에 들지 못하고 언저리에 얹혀 덤으로 딸려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장애를 가진 누군가가 달리기를 잘한다거나, 수영을 잘한다거나, 등산을 하거나, 음악이나,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고 하면 야단이 일어난다. 장애를 극복하고 이룬 인간승리라고….

마라톤이나, 수영이나 음악 미술 등은 장애와 상관없이 누구나 고통이 따르고 누구나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인데 왜 장애인들이 그 일을 하면 야단법석을 떨며 호들갑인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인간승리(?)의 주인공 부모는 어깨 펴고 살아가고 그렇지 못한 부모들은 의기소침해 지내게 되니 당당해 지라고 이야기 하는 것일까.

사실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끙끙대며 살아갈 이유는 없다고 본다. 삶이란 것이 각자 주어진 것이고, 그 범주 안에서 한계를 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안에 안주(安住)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당해지라는 교육을 받을 정도라면 주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인데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당당해지기 보다는 장애를 인정한다고 말을 한다면(정말 장애를 이해하고, 그 상태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 상태 그대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시간을 내서 당당한 부모 되는 강의를 듣지 않아도 되고 그 시간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당당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는 한번쯤 되새김질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왜, 무엇 때문에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 봐야하겠다. 그토록 자신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인지 말이다. 정말 그렇다면 아이의 장애를 사회에 어떻게 인식시켜 나갈 것인지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니까….

아이의 모든 권리는 부모가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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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서울 생. 지적장애와 간질의 복합장애 1급의 아이 부모. 11살이면서 2살의 정신세계를 가진 녀석과 토닥거리며 살고 있고, 현재 함께 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장애라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장애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지내온 것이 무지로 연결된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 장애라는 것이 일반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으며 그런 생각은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갈 즈음에 환상이란 것을 알게 돼 지금은 배우며 지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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