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의 여고동창생. ⓒ마술피리

갓 고등학교 졸업한 5명의 꿈 많은 풋풋한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2001년도의 신인감독 정재은이 만든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우리 영화가 있다.

맥반석 가게 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뇌성마비 장애인 시인을 돕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지만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에 탈출을 꿈꾸는 태희(배두나 분). 부모의 이혼과 영화에 주 배경이 되는 인천에서 서울로의 상경, 증권사 보조업무에 충실하면서 나름대로의 신분상승을 꿈꾸는 야무진 혜주(이요원 분). 공장 빈민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꿋꿋하게 살아가며 그림을 잘 그리지만 가난한 환경 탓에 그늘이 그칠 날이 없는 지영(옥지영 분). 이주중국인 외가를 둔 명랑한 쌍둥이 비류(이은실 분)와 온조(이은주 분).

이들 다섯 명은 모두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단짝친구다. 늘 함께였던 그들이지만 스무 살이 되면서 각자의 삶으로 엮어 나가게 된다. 감독은 특유의 여성적 질감으로 섬세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소녀들의 풋풋한 우정. ⓒ마술피리

어느 날 지영이 허름한 공장건물 벽에 숨은 길 잃은 새끼 고양이 티티를 만나면서 스무 살 삶에 위안이 된다. 학교 성적은 뛰어나나 부모 모두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취업 전선에서 좌절을 맛봐야 했던 그녀. 그 와중에 집이 무너져 할머니, 할아버지를 잃고 졸지에 고아 아닌 고아가 된다.

다른 친구들의 비해 안정적이지만 아버지의 가부장적 남성주의의 못마땅한 태희는 온가족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가진 날, 유심히 들여다보는 딸의 메뉴판을 뺏은 아버지가 종업원 보고 무턱대고 묻는다.

“이 집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게 뭐야”

실망한 태희는 상기된 표정으로 한마디 한다.

“아빠, 때리는 거만 폭력이 아냐. 이런 것도 인격을 무시한 폭력이라고”

이처럼 가족에 의견을 무시하는 가부장적 가족체계의 실망감을 넘어 무료함까지 느끼며 살아간다.

증권사 보조업무에 충실한 혜주. ⓒ마술피리

결국 태희와 지영은 또 다른 세계로의 일탈을 시도 한다. 숨 막히는 세상에서 벗어나 태희가 꿈꿔 온 나룻배 누워 명상을 잠기듯 그런 고요한 세상으로의 일탈을 위해…. 실제로 엔딩부분에 항공기가 창공을 오른다.

혼자만의 명상에 잠기는 태희. ⓒ마술피리

마치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립’에서 현대 사회 속에서 소외되어 가는 아미(왕비 분)가 마마스 & 파파스의 노래 캘리포니아 드림을 크게 틀어 놓고 지친 일상의 탈출을 위해 꿈과 낭만의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꿈을 꾸듯 태희와 지영 또한 소외되고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난 탈출을 꿈꾼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 속에 가볍게 먹어치워 버리는 패스트푸드처럼 쉽게 던져지는 말 한마디, 일그러진 시선들 속에 소외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녀들은 이상세계로 떠나는 것이다.

혼자 있는걸 좋아하는 고양이 티티와 지영. ⓒ마술피리

정재은 감독은 왜 많은 동물 중에 하필 왜 고양이를 택했을까? 그리고 왜 하필 영화의 무대가 인천일까? 자연스레 의문이 생긴다.

그건 아마도 개에 비해 고양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다지 달가운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양 중세에는 마녀의 사주가 끼었다고 해서 불미스런 동물로 여겼다. 지영이 할머니가 '요물'이라고 했듯이 소외된 상징물이 아닐까 싶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포스터. ⓒ마술피리

영화 주 배경은 인천이다. 서울의 위성도시로 인천은 과거에는 공업단지로서 저임금 노동으로 경제발전에 기여 했던 공돌이 공순이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곳이다. 아직도 도시 곳곳에는 추억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시간과 공간이 교차되는 곳이며 애환의 정서가 첨예하게 녹아나는 지명이 인천이다.

필자에게도 인천은 낯설지 않다. 12년 전 겨울 사무실에서 안면이 있는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 씨가 보름 뒤 월미도에서 구청용역 깡패에 의한 주검으로 발견된 곳이기 때문이다.

타블로이드 신문을 만들던 필자는 진상규명을 위해 힘 있는 기관을 찾아 동분서주했다. 추기경님의 비서까지도 만나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허사가 되고 만다. 그래서 더욱 잊혀 지지 않는 젊은 시절의 아픔으로 남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정치가, 재력가, 교수님과 같은 격이 높으신 중심부 인생과 반대로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적소수자(동성애자) 같은 사회적 약자인 주변부 인생이 있다. 중심부에 들고 싶어도 들지 못하고 저만치 떨어져 소외되는 삶의 면면들이 있다. 달리 표현하면 주류(인사이더)와 비주류(아웃사이더) 라고 흔히들 말한다. 아웃사이더란 심하게 말하자면 ‘왕따’ 다.

간혹 비주류들이 주류로 편입되는 경우도 있다. 다른 형제들은 ‘상’자 돌림인데 혼자 ‘명박’이란 이름을 가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처럼 고달픈 삶을 이겨내고 로또복권마냥 인생 역전을 거머쥔 행운아도 가끔 만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웃사이더들은 현실에서 꿈을 꿈으로만 간직해야 하는 것이 그들만의 특징이다. 저마다의 이상과 꿈이 있더라도, 말류 홈런을 날릴 역전의 기회조차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때문에 늘 유쾌하지가 못하다.

그래도 필자는 아웃사이더가 좋다. 그들의 부족하지만 넘치는 삶의 방식과 모습이 좋다. 동변상련일까? 같은 ‘왕따’ 인생으로…. 그 옛날 장애인운동 했을 때처럼 동지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은 언제나 편해지고 가슴 한구석에는 민들레 향기가 끓어오른다.

어차피 인간이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누군가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듯이 독불장군은 없다. 불완전한 세상이라는 공동체가 그래도 잘 굴러갈 수 있는 까닭도 다수의 아웃사이더와 소수의 인사이더가 공존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좀 더 다르게 생각하면, 세상의 진정한 주류는 아웃사이더라고 생각을 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리플합시다]장애인들은 이명박 대통령당선자에게 이것을 바란다

‘유토피아’는 2007년 장애인영화 전문칼럼니스트 강좌 수료생들의 모임입니다. 저희들은 영화를 사랑하고 장애현실을 살아가는 눈과 감수성으로 세상의 모든 영화들을 읽어내려고 합니다. 저희들은 육체의 장애가 영혼의 상처로 이어지지 않는 세상, 장애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는 세상, 차이와 다름이 인정되는 세상, 바로 그런 세상이 담긴 영화를 기다립니다.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위해 이제 영화읽기를 시작합니다. 有.討.皮.我. 당신(皮)과 나(我) 사이에 존재할(有) 새로운 이야기(討)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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