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을 장애인으로 살면서…. 보통의 삶, 비장애인과 함께,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그러면서도 당당하게 살자가 저의 꿈입니다. 많은 도전을 했고 또 많은 좌절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앞으로 1년 동안 영화에 대한 저의 사랑을 지면을 통해 이야기 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내가 알고 있는 진실들을 몇 가지 나열해 봅니다.

진실 1. 장애인은 모두 천사나 악마가 아니다.

진실 2. 장애인은 모두 무능력하거나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진실 3. 장애인은 모두 외롭거나 쓸쓸하거나 가정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많은 영화에서 위의 진실들을 왜곡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영화 속, 그 중에 공포영화 속에서 더더욱 그런 장애인의 모습들을 많이 발견합니다.

영화 '검은 집'은 작년에 개봉한 한국공포영화 중에서 내용이나 흥행 면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작품입니다.

검은집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해보겠습니다. 보험회사 사고조사반의 준오는 어릴 적 자기가 보는 앞에서 동생이 자살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것이 자기의 책임이라는 죄의식으로 인하여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믿음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중에 준오를 지목한 소비자 박충배에게 보험금을 받으러 갔다가 그의 아들이 자살한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박충배 얼굴에 묘한 미소를 발견한 준오는 그를 의심하게 되고 수사를 하던 준오는 사이코페스(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끼쳤음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며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사람)에 의해 이모든 살인이 저질러졌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수사를 하던 준오의 약혼자 미나가 납치되고 미나를 구하러 간 준오는 살인자와 사투 끝에 미나를 구해냅니다.

미나를 구하러가는 준오. ⓒCJ엔터테인먼트

'검은 집'은 일본의 소설가 기시 유스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공포영화 '브레인웨이브'를 연출했던 신태라 감독이 만든 첫 번째 상업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사이코패스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범죄가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개봉한 후에 각종 검색사이트에 사이코패스가 상당기간 상위권을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영화는 장애인의 모습을 두 가지로 이용합니다. 박충배가 범인으로 의심받던 영화 초반부, 그의 아내 신이화의 모습에서 다리를 절음으로써 힘없고 나약한 신이화의 면모를 강조합니다. 준오는 그런 신이화가 안쓰러워 그녀에게 도움의 편지를 쓰기도 하고 직접 방문도 합니다.

그러나 영화 중반 이후에 그런 장애의 모습은 평범함과는 다른 모습으로 사이코패스는 평범한 사람과 다름을 강조하기 위해서 장애를 이용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후반부 여기저기 시체들이 있는 지하실에서 준오와 미나가 도망을 치려는 순간 다리를 절며 손에는 칼을 들고 다가오는 범인의 모습 중 유달리 장애가 있는 다리를 강조합니다.

영화는 현실의 모습을 투영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현실 속에서 그만큼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은 ‘다름’과 ‘이질적인 존재’로 보이는 것일까요? 그래서 공포영화 속에서 그렇게 많이 보여지는 것일까요?

작년에 개봉한 한국공포영화 중 이러한 장애인의 이미지를 이용한 영화가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저는 좀 다르게 봅니다. 영화에서 그렇게 보여주기 때문에(다름과 이질적인 존재로) 그걸 접하는 대중들에게 그런 장애인에 대한 이미지가 각인되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속의 이미지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CJ엔터테인먼트

아주 오래 전, 제가 어릴 적에 동네 아이들이 저의 장애를 놀리고 흉내를 내며 지나가던 기억은 솔직히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나무라면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던 그 아이들 부모의 동정어린 눈빛과 말 한마디

“다신 저애 가까이 하지마!”

이런 기억이 저에게만 있을까요?

공포영화 '검은 집'은 음울한 분위기, 긴장감 있는 구성, 황정민, 유선을 비롯한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 등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원작이었던 일본 소설에서도 범인이 장애인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만약 아니라면 감독은 편하게 많은 영화들에서 그런 것처럼 의도적으로 장애인을 부정적 이미지로 이용한 것 입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보는 관객에 의해서 다시 생성되는 것이지요.

제가 영화를 접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본 영화중에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으로 나왔던 '노웨이 아웃'이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한 20년 전의 일이라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이중스파이를 다룬 영화인데 이 영화에 장애인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의 친구로서 잠깐 나오지만 그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컴퓨터프로그래머로 나오는데 전 이 영화를 보면서 솔직히 ‘장애인도 저렇게 멋진 직업을 가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노웨이 아웃 포스터. ⓒ이십세기폭스필름

그 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영화 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변해왔습니다. 현대여성에 대한 이야기, 남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말하는 방식들도 변해왔습니다. 착한 남성상, 행복한 여성상, 세상의 모습, 직장의 모습 등등.

그런데 한국공포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장애인 모습은 어쩌면 그리 비슷할까요? 세상속의 장애인의 모습이 비슷해서 그런가요? 아니면 장애인의 모습은 다 다른데 장애인을 바라다보는 세상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건 아닐까요?

이젠 공포영화 속 장애인의 모습도 고정된 시각으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한국공포영화의 이야기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고 그런 영화를 보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에게 장애인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만들어주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두를 행복한 세상으로 이끄는 첫걸음이니까요.

모 광고사 카피처럼.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리플합시다]장애인들은 이명박 대통령당선자에게 이것을 바란다

‘유토피아’는 2007년 장애인영화 전문칼럼니스트 강좌 수료생들의 모임입니다. 저희들은 영화를 사랑하고 장애현실을 살아가는 눈과 감수성으로 세상의 모든 영화들을 읽어내려고 합니다. 저희들은 육체의 장애가 영혼의 상처로 이어지지 않는 세상, 장애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는 세상, 차이와 다름이 인정되는 세상, 바로 그런 세상이 담긴 영화를 기다립니다.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위해 이제 영화읽기를 시작합니다. 有.討.皮.我. 당신(皮)과 나(我) 사이에 존재할(有) 새로운 이야기(討)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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