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이 되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장래를 설계하는 꿈 많은 청소년기를 그는 생계를 위해서 여기저기를 떠돌며 남의집살이를 해야 했다. 대학생을 만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국민학교도 못 나온 자신에게 대학생은 언감생심 쳐다보지도 못할 높은 나무였다.

“재네들은 무슨 팔자로 대학생이 되고 내 신세는 이게 뭐람”

그러나 언제까지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인가. 어떻게든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수소문을 해 보니 구포에 청소년야학이 있었다.

부산댄스스포츠 사회체육대회 참관(왼쪽 첫 번째 강창근씨). ⓒ이복남

정육점을 그만두고 낮에는 건설업 잡부로 일을 하고 밤에는 야학을 다녔다.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으니 검정고시 준비를 했다. 야학 선생은 주로 대학생들이었는데 하면 된다는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꿈도 꾸기 어려웠던 대학이지만 조금씩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중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는 한 번에 붙었다. 예전 정육점 주인을 만났더니 다시 정육점으로 오라고 했다. 공부를 해야 하기에 안 된다고 했더니 공부시켜 주겠다고 했지만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

이번에는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도전을 했다. 첫 번째 시험에서 떨어졌다. 이를 악물고 다시 도전을 했다. 이까짓 것 싶었는데 또 떨어졌다. 네 번 만에 고입검정고시에 합격을 했다. 이왕 내친 김에 끝까지 가 보자 싶어 대입 즉 고등학교졸업학력검정고시를 준비했다.

1996년이고 27살의 가을이었다. 당시에는 토목공사장에서 잡부로 일을 하고 있었다. 철근 시멘트 등 자재를 나르거나 흙을 자루에 담아서 옮기는 일을 주로 했다. 돈이 조금씩 모이게 되자 어쩌면 꿈에도 그리던 대학생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절로 힘이 나서 열심히 일을 했다.

잠깐 휴식 시간에 기둥에 기대어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르릉 쾅쾅 천둥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근처에 있는 H빔이 넘어지면서 그의 머리를 쳤던 것이다. 다행히 안전모를 쓰고 있어서 머리를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철재가 넘어지면서 그의 안전모를 치는 바람에 허리가 앞으로 꺾이면서 꼬꾸라졌던 것이다.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척추수술을 받았지만 처음 얼마동안은 생사가 오락가락 했다.

그리고 의사들이 이젠 안심해도 된다고 했을 때 “살려 주셔서 고맙습니다”했던 마음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생명을 건졌다는 안도감도 잠시 장애인이 되었다는 몸서리치는 충격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내가 병신이 되다니”생각조차 하기 싫었지만 눈 떠 보면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렇게 살면 뭐하나”날마다 자살을 꿈꾸었지만 동생 얼굴을 보면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동생이 퇴근 후에는 오빠 병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지극정성으로 오빠를 간호했던 것이다.

컴사랑동아리 나들이(왼쪽 첫 번째 강창근씨) ⓒ이복남

여동생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자신의 꼴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병원 생활에 조금씩 길들여지자 다른 환우들과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갖가지 사연도 많았다. 환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신보다는 경증의 환우가 있는 반면 더 중증인 환우들도 많았다.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 동물인가. 고통은 혼자만의 것 인양 날마다 자살을 꿈꾸었는데 자신보다 더 중증의 환우를 만나면 그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그래 이만하기가 얼마나 다행인가”

조금씩 마음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병원에는 기독교 전도사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러나 별로 내키지 않았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동생이 불경 카세트테이프를 가져다주었다.

틈만 나면 불경 테이프를 들었다. 부처님은 무릇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제행무상이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찰나도 가만있지 않고 변하는 것이 우리들의 몸일 진데 육신의 병고쯤이야 무엇이 대수겠느냐.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강창근씨 이야기는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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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합시다]장애인들은 이명박 대통령당선자에게 이것을 바란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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