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독립보행을 방해하는 잘못 설치된 차량진입 억제용 말뚝. ⓒ에이블뉴스

시각의 장애로 인해 가장 제한받는 것은 독립된 이동이다.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 및 사회 활동의 기회가 줄어들고, 타인에게 의존하게 되어 무력감을 느끼기 쉬우며, 교육 및 고용의 기회도 박탈될 뿐 아니라 운동부족으로 건강 문제까지 일으킬 수 있다. 이처럼 독립보행의 제한은 단순히 기능적 장애를 넘어 재활 성공 여부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동에 필요한 개인 기술 및 관련 서비스의 확대, 정부 지원 체계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늘고 있으나, 그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한계를 실감한다.

오늘은 보행의 기능적 발달을 저해하고 시각장애인의 주체적 독립적 사고를 방해하는 몇 가지 문제점을 시각장애인의 시각에서 조명하고자 한다.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제한하는 요소가 곧 안내견의 가치를 논하는 배경이 되기 때문에, 안내견 보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첫째, 분리된 특수교육 시설 및 안마 위주의 직업교육은 시각장애인 당사자가 독립 보행에 대한 필요성을 실감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맹학생들은 길게는 16년(유치부 및 전공과 포함), 짧게는 2년 동안, 같은 시설에서 같은 사람들과 함께 분리된 환경에서 교육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외부와 접할 기회는 그 외 학생들보다는 훨씬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학생들은 익숙한 곳 외의 낯선 환경에 나아가기를 꺼려하고, 사회적 스킬도 동일 연령에 비하여 뒤떨어진다. 특히 모든 특수교육 시설은 기숙제로 운영되고 있어 외출 빈도는 더욱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시기의 학생들은 끊임없이 외부 자극을 접하고 활동의 폭을 넓혀야 할 시기이지만, 교육 환경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맹학교 재학생 및 졸업생을 대상으로 보행교육 실태 조사 연구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자신의 보행 수준 만족도에 대하여 '아주 만족한다'고 맹학교 재학생의 24.7%가 응답한 반면 대학생은 3.0%가 이에 응답한 것이다. 또한 ‘만족한다’ 고 답한 맹학생들은 66.7%였으나, 대학생들은 39.4%에 그쳤다. 이 연구는 분리된 환경에서의 보행 욕구가 상대적으로 낮음을 드러내고 있으며, 대학과 같이 정안인과 함께하는 사회에 노출되면서 비로소 단독 보행능력 미달의 심각성을 깨닫게 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취업 이후의 일이다. 안마업 위주의 획일화된 직업 형태로 시각장애인들의 독립보행 욕구가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만다. 현재 안마사의 대부분은 시술 소에 고용되어 있는 실정이며, 시술소 특성상 일반 다른 직장들의 근무 시간과는 다른 패턴으로 업무가 진행되므로 외부 활동에 많은 제약을 준다. 또한 상시 근무 체제로 운영되어 출입에 제한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직장을 옮기는 경우도 많아 보행에 필요한 주변 오리엔테이션 정보를 습득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취업 이후에도 외부와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독립보행의 필요성이 크게 와 닿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일 뿐, 환경 탓만 하며 주저앉지 말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적극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이 다양한 환경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맹학교나 시술소와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에서는 지역사회 및 자원봉사 시스템을 활용하여 취미, 여가생활이나 학습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둘째, 시각장애인들의 의존적 사고는 보행을 위한 사회제도의 틀을 마련함에 있어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사회 편의시설 수준은 그 시설이 서비스 대상자, 즉 시각장애인의 필요에 맞춰 그 편의 증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당사자가 얼마나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주체적인 사고로 편의 시설을 요구하는가에 따라 질적 측면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여기서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이동권을 위해 시각장애인계가 그동안 요구했던 서비스 수준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시각장애인계에서 시각장애인의 독립보행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 주요시설의 확대를 부르짖기보다 이동을 위한 대체수단 및 도우미서비스의 확대를 부각시키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여전히 시각장애인들이 맘 놓고 독립적으로 활동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좁은 인도, 불규칙한 볼라드, 위험한 공중 장애물, 횡단 시점 파악이 어려운 건널목과 음향 신호등의 비표준화 등과 같은 외부적인 어려움과,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시선 등으로 부담을 느끼는 내부적인 어려움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로 스스로의 기본 권리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정안인과 동등한 길을 스스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장애인에 대한 대중의식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시각장애인 스스로가 삶을 계획하고 가치를 높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며, 이것이 곧 기본 권리이다.

또한, 장애인 서비스를 단순히 편의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신체장애요소에 대한 효과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장애인 스스로가 노력하여 독립적 사고와 생활을 영위해 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올바른 장애인 서비스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 시각장애인계는 다시 한 번 냉정히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재 전국의 시각장애인연합회와 운수 관련 업계는 심부름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점점 그 규모를 확대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결과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편리하게 갈 수 있다. 또한 일부 대학에서는 시각장애인 학생을 위한 도우미 제도를 확대하여 통학 뿐 아니라 캠퍼스 내에서의 이동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대체수단의 확대는 시각장애인의 편의증진에는 기여하였을지 몰라도, 독립보행의 의지를 반감시키는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물론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여러 긍정적 측면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이동의 독립성 여부만을 놓고 논하고 있으므로 오해가 없길 바란다.

그렇다 보니 실제 보행 환경에서 요구되는 요소, 예를 들어 음향신호등 및 음성유도기 설치 표준화, 유도블록 확대, 점자표지판 부착 등과 같은 내용들은 유수 언론들에서 더욱 관심있게 보도할 지언정 시각장애계에서는 오히려 냉담한 상황이다.

문제의 해결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간단히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시각장애인 스스로의 요구 수준이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 때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희망찬 미래를 이끌어 갈 리더는, 현재 시각장애인계의 리더 그룹이 추구하는 가치 체계가 다수의 시각장애인의 독립적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따져볼 수 있는 안목을 지녀야 한다. 단순히 눈앞에 있는 편리성을 쫓기보다는, 시각장애인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정책 실현 및 사회분위기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 당사자의 모범적 태도이다. 현재 시각장애인계의 오피니언 리더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우월을 앞세워 비합리적 사고의 틀 속에 자신을 가두어 놓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익 논리를 잘못 해석하여, 순간의 행복이 미래를 망치는 지름길로 들어서게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곰곰이 따져볼 때이다.

[리플합시다]장애인들은 이명박 대통령당선자에게 이것을 바란다

선천성 시각장애로 특수학교(대전맹학교)를 나와 2002년 창원대학교에서 특수교육과 사학을 복수전공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첫 안내견 강토와 만나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수준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방의 열악한 현실에서 안내견 강토의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시각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일깨워 주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지난 2005년에는 삼성화재 공익광고에 출연하여 대한민국광고윤리대상을 수상하였고, 안내견에 대한 대중의식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 입사하여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홍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 및 안내견 인식개선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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