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자가 당선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당선된 이명박 후보자를 ‘당선자’라 할 것인가 ‘당선인’이라 부를 것인가로 왈가왈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당선자'라는 용어를 써달라고 하는데,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당선인'이란 용어를 사용해 주기를 원한다. ‘당선자’가 맞는 지 ‘당선인’이 맞는 지 국민들은 참으로 헷갈린다.

헌법/법제처. ⓒ이복남

헌법에서는 ‘당선자’라하고 대통령직인수에관한법률에서는 ‘당선인’이라고 되어 있어 헌법재판소에서는 ‘당선자’를 주장하고 인수위에서는 ‘당선인’을 고집하는 모양인데 왜 헌법과 인수위 법에 각기 다른 용어를 사용하여 이런 혼란을 초래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그동안 언론에서는 ‘대통령 당선자’라고 표현하였는데 인수위에서는 왜 난데없이 ‘당선인’을 들고 나왔을까. 설마 자(者)자가 ‘놈자’자로 사람을 낮잡아 이르거나 비하하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 때문은 아니겠지. 만에 하나 ‘장애자’가 ‘장애인’으로 바뀌었듯이 '당선자'보다 '당선인'이 더 우대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불러 달라고 한 것은 정말 아니겠지.

대통령직인수에관한법률/법제처. ⓒ이복남

우리나라에 장애인복지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81년이었다. 1981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KBS에서 기념방송을 했다. 그때 처음으로 제정된 법이 ‘심신장애자복지법’으로 ‘장애자’라는 말도 처음으로 만들어진 용어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장애인 전체를 지칭하는 말은 ‘병신’이나 ‘불구자’였고 그밖에 개별 장애를 지칭하는 용어로 봉사, 소경, 앉은뱅이, 절름발이, 벙어리, 귀머거리 등이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자’라는 용어는 일본의 ‘장해자(障害者)’에서 차용해 온 것 같은데 지금도 보험 등 일부에서는 ‘장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기념방송을 하면서 아나운서가 ‘장애자’라고 하자 일부 장애인들이 “왜 놈자를 쓰느냐, 기분 나쁘니 인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법률 제정당시부터 ‘장애인’이라는 말이 나왔으나 법은 이미 ‘심신장애자복지법’으로 제정이 되었고 ‘장애인’으로 고치라는 장애계의 요구는 계속되었다.

오랜 논란을 거듭한 끝에 ‘장애자’에서 ‘장애인’으로 공식적으로 바뀐 것은 1989년 12월 30일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부터였다. 그런데 법은 물론이고 관공서나 언론에서도 ‘장애자’라고 부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미 ‘장애자’로 각인된 후였던 것이다.

그 사이에 한 장애인단체에서 ‘장애우’를 들고 나오는 바람에 혼란은 가중되었다. 보건복지부나 장애인단체 실무자가 아닌 다음에야 사회에서는 여전히 ‘장애자’가 통용되고 있다. 심지어는 관공서에서도 장애인복지 담당이 아닌 곳에서는 ‘장애자’ 또는 ‘장애우’를 사용하고 있고, 공공기관의 표지판도 수정되어야 했지만 아직도 ‘장애자’ 또는 ‘장애우’라는 표지판을 볼 때면 참으로 씁쓸하다.

자(者)나 인(人)이나 둘 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자의 쓰임을 보면 학자, 기자, 생산자, 소비자, 판매자, 구매자, 피해자, 과학자, 교육자, 노동자, 참석자, 기술자, 합격자. 유권자, 수상자, 후보자, 봉사자, 연기자 등 얼마나 많은가.

언제부터인가 만나는 사람들의 새해 인사가 ‘부자 되세요.’이다. 부자(富者) 역시 놈 자를 쓴다. 그런데 누구나 부자가 되어 싶어 하면서도 ‘부자’는 왜 ‘놈자’를 쓰느냐 부인(富人)으로 바꿔 달라는 사람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뼈를 깎고 피를 말리며 수도하는 사람들의 최고 목표인 성자(聖者)는 또 어떤가.

그런데 인의 쓰임을 보면 재미있다. 화성에서 온 사람은 화성인 또는 우주인이라고 한다. 한국 사람은 한국인, 미국사람은 미국인, 유대나라 사람은 유대인, 법률에 종사하는 사람은 법조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인, 유대인, 화성인, 우주인, 법조인 등을 한국자, 유대자, 화성자, 우주자, 법조자 등으로 고쳐 부르는 것은 어떤가.

구절초/청야카페. ⓒ이복남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중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경제대통령을 내세운 사람이다. ‘당선자’냐 ‘당선인’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꽃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정말 경제를 살려 전 국민을 부자(富者)로 만들어 준다면 ‘놈자’자도 괘의치 않으리라.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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