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유토피아의 영화읽기 막내 서성민입니다. 지면을 통해 인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교육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영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아울러 이 칼럼방이 서로 오해가 있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으면 고쳐나가는 긍정적인 대화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장애인 관련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글을 읽으시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충고 부탁드립니다. 항상 배우는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시작해볼까요?

멀찍이 떨어져서 딸의 입학식을 지켜보는 김진옥씨. ⓒ김진열

최근 들어서 다큐영화를 접할 기회가 많아서 그런지 관심이 많아졌다. 다큐영화의 매력이라고 하면 꾸미지 않는 진솔함, 솔직함 같은 것들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 본 다큐영화는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되어 상영되었던 ‘진옥언니, 학교가다’이다. 이 영화는 8년 전 상영되었던 ‘여성장애인 김진옥씨 결혼이야기’의 후속편이다.

전편의 내용이 김진옥씨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후속편의 내용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가는 진옥씨의 개인적인 모습 뿐 아니라 함께 사는 가족들의 모습까지 담고 있다. 여성장애인으로서 어머니 역할, 아내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솔직담백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가족들의 진솔한 모습까지도 함께 볼 수 있다.

김진옥씨와 딸 서경의 정감어린 샤워 모습. ⓒ김진열

먼저 진옥씨가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은 제목 ‘진옥언니, 학교가다’에서 어렴풋이 찾을 수 있다.

영화를 보기 전 ‘진옥언니, 학교가다’라는 영화제목을 접했을 때 나는 ‘주인공 김진옥씨가 학교를 다니는 영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학교 다니는 사람은 진옥씨가 아닌 진옥씨 딸 서경이었고, 진옥씨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학교에 간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어렸을 때 많이 배우지 못했다는 진옥씨의 말을 통해 영화 마지막에는 진옥씨가 학교를 다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지만 학교 다니는 장면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김진옥씨의 학교는 세상이다. 전문 상담원교육을 마친 김진옥씨. ⓒ김진열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진옥씨가 학교에 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머리에서 맴돌았다.

나름대로의 생각 끝에, 학교라는 곳을 배움의 장소라고 정의 내린다면 진옥씨에게는 세상 전체가 학교이고, 그래서 진옥씨는 지금 세상을 배우는 학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옥씨가 학생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준비하는 모습, 상담원 양성과정을 수료하는 모습 등 학생같은 모습을 영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한 자녀의 어머니가 되고, 한 아이의 학부모가 되어가며 세상이라는 학교에서 한 학년을 마친 진옥씨는 새로운 과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또 어떤 모습의 학생으로 남편에게, 자녀에게, 이웃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나타날 것인지 기대가 된다.

서경의 옷을 입히고 머리를 빗기는 일 등은 아빠의 몫이다. ⓒ김진열

다음으로 진옥씨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보통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간다는 말을 들으면 그 가정에는 분명히 비장애인들의 가정에는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여기서 말하는 특별한 무엇이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비장애인의 눈물겨운 희생이나 사랑 같은 것을 말한다.

영화 속 진옥씨의 입을 통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비장애인들의 선입견을 들을 수 있었다.

"니(진옥씨)가 뭐가 힘드냐? 복에 겨워하는 소리마라"

"세상에 니네 남편같은 사람이 어디 있냐?"

진옥씨에게는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일보다 비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을 견디는 일이 더 힘들어 보였다.

장애인 가족에 대한 쓸데없는 동정을 한 방에 날리는 경쾌한 산책길. ⓒ김진열

이 영화는 나와 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 가정은 아주 특별하거나 대단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면 진옥씨 가정이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그것이 더 특이하게 보일 정도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일하러 나가고, 사소한 일로 의견충돌이 생기고, 잔소리하는 등 여느 가정에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모습들이 펼쳐진다.

항상 사이좋은 모녀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김진열

또 딸을 키우고 학교에 보내느라 자신이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간다는 말을 하는데 이것 역시 장애 유무를 떠나서 많은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일이지 않는가?

우리 어머니만 봐도 그렇다. 우리 어머니는 지금도 제일 하고 싶은 것이 여행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아직 제대로 된 여행은 한 번도 못하고 계신다. 그 모습을 뵈면 아들로서 그저 고개가 숙여지고 할 말이 없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너무 훌륭하신 것 같다.

진옥씨가 웃는다. 그 웃음이 아름답다. ⓒ김진열

그저 평범하기만 한 이 영화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장애인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는 비장애인들의 선입견을 훌쩍 뛰어넘으며 너무나 평범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살아가는 진옥씨의 모습 때문이다.

영화 도입부 진옥씨는 자신의 소망은 자녀를 평범하게 키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누구보다도 진옥씨는 잘 알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 선입견은 진옥씨가 평생을 살아오며 겪어온 일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낯설고 독특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게 될 그날을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영화 속 세상처럼 장애인의 일상이 특별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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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2007년 장애인영화 전문칼럼니스트 강좌 수료생들의 모임입니다. 저희들은 영화를 사랑하고 장애현실을 살아가는 눈과 감수성으로 세상의 모든 영화들을 읽어내려고 합니다. 저희들은 육체의 장애가 영혼의 상처로 이어지지 않는 세상, 장애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는 세상, 차이와 다름이 인정되는 세상, 바로 그런 세상이 담긴 영화를 기다립니다.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위해 이제 영화읽기를 시작합니다. 有.討.皮.我. 당신(皮)과 나(我) 사이에 존재할(有) 새로운 이야기(討)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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