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정동진역. ⓒ정동진역(http://jeongdongjin.go.kr)

대전센터 학생들과 함께 하기로 한 겨울 기차여행…. 학생들도 나도 기차여행인 만큼 맘도 설레었지만 겨울바다에 대한 기대는 그 이상으로 우리를 들뜨게 했다. 새벽같이 떠나는 기차를 타기 위해 모두 분주하게 움직였고 연락받고 기다리시던 승무원 아저씨들의 발 빠른 동작으로 휠체어를 탄 학생들까지도 신속히 기차에 올랐다. 들뜬 마음은 창밖으로 이어지는 겨울풍경과 기차레일을 따라 이어지고….

제천을 지나기 시작하면서 창밖으로 시가지를 구경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특히 영월을 지나면서는 기차는 마치 겨울이라는 긴 터널로 들어가는 것 같다. 희끗희끗 눈을 머금은 듯 한 산은 외롭고 고독하다. 앙상한 가지로 뒤덮인 산은 모호하고 춥다. 그러지만 춥고 외로운 가지와 산과 눈은 조화로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그래서 겨울 산이 따사로워 보였던 것 같다. 산에 대한, 겨울에 대한 명상이 길어질 때쯤 기차는 진퇴양난 거대한 산속에 파묻힌다. 백두대간의 줄기의 끝에서 기차는 높은 산의 경사를 이기지 못한 것이었을까…. 덜컹덜컹 머무는듯하다가 후진을 한다. 말로만 듣던 영동선의 지그재그운행기법인 ‘스위치백’이었다. 통리역과 도계역사이에 흥전 ~ 나한정역 구간인데 경사가 심한 산간지역의 열차 운행방법으로 널리 알려진 곳 이었다. 놀라움반, 호기심반으로 들뜬 마음이었건만 평정심을 되찾은 기차는 다시 속도를 내고 동해를 거치는 듯 하다 이내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달리기 시작한다. ‘아~’ 하는 신음소리가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고 얼굴을 창가에 들이댄 채로 마음은 바다에 빠진다. 6-7시간의 오랜, 그러나 지루하지 않은 여행 끝에 이내 기차는 정동진역에 도착한다. 기차역에 내리니 코끝이 찡하도록 바다바람이 매섭다. 우리나라에서 바다가 제일 가까운, 바다와 붙어 있는 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플랫폼 밑으로 난 계단아래가 백사장이고 눈만 치켜뜨면 바다가 접해 있다.

노을과 함께한 역 - 고즈넉하고 쓸쓸하다. ⓒ정재은

기차는 하루 몇 번 오지 않는 쓸쓸한 역이지만 연중 끊이지 않는 관광객들의 발길로 역 주변은 어슬렁거린다. 그렇지만 바다는 이를 다 수용하고도 남는 듯 모든 소음들은 파도소리로 덮이고 코는 바닷내음으로, 눈은 푸른 바다와 하늘로 가득하다.

정동진 기차여행은 우리나라 기차여행의 원조(元朝)이지만 꼭 관광 상품으로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기차시간만 맞는다면 가족과, 연인과의 여행도 적당하다. 밤기차를 이용하면 새벽시간 해돋이 시간과 겹쳐서 역에 도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그렇다면 가는 길은 컴컴한 암흑 속에서 지루하게 잠만 자야하는 어려움도 감수해야 한다. 반면에 필자가 추천하는 정동진 여행은 새벽에 떠나서 저녁노을을 보고 밤에 돌아오는 코스다.

밀레니엄 행사처럼 모두들 해돋이만 상상하고 동해로 몰려들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의 풍경은 또 다른 풍광(風光)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만남과 헤어짐의 상징인 기차역이어서 일까? 플랫폼을 바라보는 마음과.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이 소박하고 착하기 그지없고. 플랫폼에서 관망하는 해돋이와 석양의 감회는 새롭다. 더구나 덩그러니 서있는 소나무에서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그랬다. 겨울바다 정동진의 풍경은 겨울산처럼 고독하나 고독하지 않았고 앙상한 나무 같았으나 약하지 않았다. 바다와 기차와 소나무는 서로를 품으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동진의 일출사진 ⓒ정동진역

그러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겨울바다라는 낭만일색과 길 떠난 이의 고독, 그리고 함께하는 이들의 즐거운 설렘이 삼위일체가 되었던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돌아오는 길. 피곤한 기차 안에서 겨울바다에 추억을 되새기고 있었을 때 광활한 바다와 쓸쓸한 플랫폼, 고독한 소나무는 그렇게 고즈넉하게 외로운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기차여행 가는법=정동진역은 강릉시내에서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약 18㎞ 떨어진 지점에 있다. 일반열차는 청량리에서 출발하고 각 주요역을 거쳐간다. 열차 연결이 가능한 지역을 통해 관광열차가 운행 중이다. 관광열차 안내는 철도청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리플합시다]장애인들은 이명박 대통령당선자에게 이것을 바란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경기지사에 재직 중이다. 틈틈이 다녀오는 여행을 통해 공단 월간지인 장애인과 일터에 ‘함께 떠나는 여행’ 코너를 7년여 동안 연재해 왔다. 여행은 그 자체를 즐기는 아름답고 역동적인 심리활동이다. 여행을 통해서 아름답고 새로운 것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우리네 산하의 아름다움을 접하는 기쁨을 갖는다. 특히 자연은 심미적(審美的) 효과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정화시켜 주는 심미적(心美的) 혜택을 주고 있다. 덕분에 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장애라는 것을 잠시 접고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받아온 자연의 많은 혜택과 우리네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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