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12월 대선에, 내년 4월 총선까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인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우리가 하는 말로 장애인이 그나마 사람대접 받는 때 중 장애인의 날을 제외한 나머지 한 때, 바로 그 때가 돌아 온 것이다. ^^;

그러나 이것도 알고 보면 그게 아닌 것 같다. 막상 투표권을 행사하려하면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땐 그냥 가만히 있어주길 바라는 것 같은 무언(無言)의 압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장애인당사자보단 오히려 시설장이나 단체장들에게 정성을 쏟는 정치인들을 볼 때면 더더욱 그렇다.

정치참여 현실

의식을 가지고 참여했던 작년 5.31지방선거를 보자면 위의 것들과 함께 장애인의 선거권 행사를 힘들게 하는 방해요소가 알게 모르게 너무나 많다. 가장 직접적이고 확연히 눈에 띄는 것으로는 바로 투표소의 접근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지하나 2,3층에 설치된 투표소, 휠체어 동선이 무시된 투표소 등이 생각 외로 꽤 있었다.

이런 신체장애인의 물리적 방해요소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바로 지적장애인들의 투표권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지적장애인들의 투표를 도울 수 있는 어떠한 제도나 도구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지적장애인들을 위해 그림이나 이야기 형식으로 된 공보물을 제작하기도 하고 투표용지 또한 아주 크게하여 지적장애인들의 투표권을 보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그나마 법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지정도우미 제도조차 선거관리인들의 무지로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정도우미 제도란 혼자서 기표를 하기 어려운 중증의 신체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이 함께 동행한 사람(가족이나 활동보조)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인데 이를 아예 모르거나 알아도 잘못 알고 있어서 기표소에는 둘이 못 들어가게 하는 등 시행이 거의 되지 않았다.

장애인을 투표소에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런 물리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뜻 장애인을 위한 제도라고 생각되는 거소투표나 부재자투표도 장애인의 선거참여, 투표권을 방해하는 요소이다.

투표소에 투표하러 가면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선거관리원으로부터 한마디씩 꼭 듣는 소리가 있다. ‘몸도 불편하신데 다음부터는 거소투표 신청하셔서 집에서 투표하세요.’라는 말이다.

언뜻 장애인을 위하는 좋은 말 같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자. 왜 장애인은 뭐든지 따로 해야 하는가? 접근권이 안 돼 있는 투표소가 문제지 거소투표를 신청 안 한 장애인이 잘못이란 말인가? 그리고 거소투표, 부재자투표는 절대 권장할 게 못되는 제도가 아닌가? 특히 제삼자의 간섭이나 개입의 가능성이 너무나도 많은 장애인에게는 말이다.

이렇듯 장애인의 선거참여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이런 현실들을 보다보면 그나마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는 시기라는 선거철이 정작 장애인의 고립감을 더욱 확실히 느끼게 하는 시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는 시기가 아니라 장애인이 갖고 있는 표에, 그리고 그것을 가져다 줄 것 같은 사람들(시설, 단체)에게 관심을 갖는 시기인 것이다.

정치참여의 중요성

그렇다면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우리는 어찌해야하는 것일까? 현실이 이러니 아예 무시하고 선거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님 어찌해야 하나?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엄연한 사실이 하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관심을 갖든 갖지 않든 정치인들은 우리의 표를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와 상관없이 우리의 권리가 거래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일부 시설이나 단체에서는 실제로 거소투표와 부재자투표가 그렇게 악용되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또한 알아야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 정치인들이 탐내는 그 표라는 권리는 내가 행사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로 간다는 것을….

꼭 부정투표가 아니더라도 침묵하는 사람의 권리는 사라지므로 사라진 그 권리만큼 다르게 말하는 다른 주장은 힘을 얻는 것이며, 그것이 곧 침묵한 사람의 뜻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침묵이나 무관심은 절대 답이 될 수 없다. 누가 뭐래도 현재까지 장애인의 권리의 가치가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행사되는 유일한 순간은 바로 투표소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비록 더디고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지더라도 우리의 권리를 버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일하게 주어진 평등의 권리마저 포기할 순 없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어려움과 자율적 선택을 축소하는 그 모든 장벽을 넘어 우리가 우리의 기본적 권리부터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 때 우리가 희망하는 것이 그 무엇이든지간에 우리는 그것을 이루는 기초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17년간 재가 장애인으로서 수감생활(?)도 해봤고 시설에 입소도 해봤으며 검정고시로 초중고를 패스하고 방통대를 졸업. 장애인올림픽에서는 금메달까지 3개를 땄던 나. 하지만 세상은 그런 나를 그저 장애인으로만 바라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알게 된 자립생활! 장애라는 이유로 더 이상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 분리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이 꿈꾸는 곳. 장애인이 세상과 더불어 소통하며 살 수 있는 그날을 위해 나는 지금 이곳 사람사랑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하며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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