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79년 8월 24일, 이탈리아 나폴리의 연안에서 활화산 베수비오가 폭발했다.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의 길목에 위치한 폼페이는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번성했고 많은 이가 사고 있어 인명 피해가 컸다.
영국의 소설가 에드워드 리턴은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그린 <폼페이 최후의 날>이란 작품을 내놓았다. 소설 속 주인공 니디아는 꽃 파는 눈먼 소녀다. 비록 앞을 보지 못하지만 이런 처지를 비관하거나 슬픔에 빠지지 않았고, 보통사람들과 똑같이 자신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더니 순식간에 퐁페어기 짙은 연기와 먼지로 가득 뒤엎이게 되었다. 대낮임에도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컴컴했고, 사람들이 놀라 허둥대며 출구를 찾아 헤매느라 도시 전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지만 니디아는 월래 앞을 보지 못하는 데다 지난 몇 년 동안 골목골목을 누비며 꽃을 팔았기 때문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촉감과 청각에 의지해 통로를 찾아냈고 수 천 명이 사망하는 대재앙 속에서 많은 이를 도와 그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불행이 행운으로 뒤바뀐 것이다.
에드워드 리턴은 이 작품을 통해 말한다.
“운명은 공평하다. 니디아의 한쪽 문을 닫아 버린 대산에 또 다른 한쪽 문을 열어 주었으니깐, 그리고 이것은 비단 니디아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장애계의 희망으로 부상했던 ‘활동보조서비스’가 수많은 갈등 속에 시작 전부터 끊이지 않던 반목과 갈등의 소리들이 시행중인 현재에도 여전히 장애계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활동보조 사업이 공고되고 우리역시 희망을 안고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장애인의 지역사회로의 사회통합을 기원하며, 대망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서너 달이 지나도 활동보조 신청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우편으로 홍보물을 대상자들한테 보냈고 군청홈페이지, 군소식지를 통해 충분한 홍보를 했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조바심에 기다리다 결국 144명의 대상 중 수급대상자를 대상으로 가가호호 방문을 했다. 정보를 접할 수 없어 활동이 부진 한 것이지 활동보조에 대해 설명을 하면 많은 장애인들이 활동보조 신청을 할 터이고 무리 없이 다른 시.군에 못지않는 센터운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역여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30분 이상을 달려 찾아 갔겄만 정작 당사자를 만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스러져가는 외양간과 주인의 장애를 묵묵히 지켜봐주고 있음직한 황소 한 마리가 나를 반겨줄 뿐이었다.
대상이 1급 장애인이다 보니 한정되어 있고 거의 정신지체거나 청각장애인이 그 대상이었다.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있거나, 행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이미 시설에 입소해 있었고 생활 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는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있어서 밭에 나가고 없었다.
한집 두 집 장애인 당사자들을 만나지 못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더러 한두 명 만나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활동보조가 아니었다. 설령 활동보조를 원한다하더라도 농사를 도와주는 활동보조가 필요했던 것이다.
과연 이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 활동보조인가? 생활보조인가? 장애인의 진정한 자립생활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장애계의 큰 기대와 관심 속에 시작된 활동보조서비스제도! 어느 정도 수준에서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새겨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