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의 척수장애인들이 ‘척수장애인 동료간상담가 ’로 새 출발했다. ⓒ서울척수재활지원센터

사고나 질병 등으로 불시에 장애를 갖게 된 척수장애인이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받아들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개 5년 이상. 그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배 척수장애인들이 병원과 집안에 칩거해 있는 장애 초보생을 휠체어를 밀고 찾아나섰다.

지난 10월 26일, ‘척수장애인 동료간상담가 양성교육’을 수료한 척수장애인 10명은 “척수손상으로 절망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은 똑같이 아파본 사람들”이라며 “장애를 인정하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같은 터널을 거쳐왔던 사람들로서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우리의 경험을 나눠주고 싶다"며 결의를 다졌다.

오토바이 사고로 흉추를 다쳐 휠체어를 사용하는 한강희씨는 “저도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퇴원만 하면 두 다리로 걸어다닐 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한다. 지금은 핸드 콘트롤 차를 운전해 안 가는 곳 없이 다니는 활달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 때는 솟아나는 분노를 어쩔 줄 몰랐다고. 친척들조차 왠지 거리를 두는 것 같아 어머니께 죄스런 마음뿐이었다.

“의사들이 말해주지 않아도 앞으로 내가 못 걷겠구나 그걸 느꼈어요.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 스포츠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김소영씨는 “그 때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가 않았어요”라고 덧붙인다. “그래도 휠체어 탄 사람들이 찾아오는 건 막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그랬듯이 우리들이 찾아가는 것이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그녀는 이처럼 동료간상담의 필요성을 확신하고 있다.

가스펠 가수로 활동하는 안성빈씨는 “저는요. 돌봐주시던 아버지가 힘드실까봐 먹고 씻고 싸는 거 이거 안 하면 안되나 고민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혼자 살아요.”라며 밝게 웃는다. 그는 자신의 사는 모습을 후배 장애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 곳곳을 누비고, 활동보조인과 먹고 싶은 요리를 만들어 먹는 지금의 삶은 병원에서 갓 퇴원했을 때는 전신마비 장애인인 그로선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다.

김형희씨는 이번 동료간상담가 강의 시간 중 몇 번은 엎드려 있어야 했다. 엉덩이에 생긴 욕창이 악화된 것을 알고 동료들이 내버려 두지 않았던 것. 그녀는 그것이 척수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비장애인들과 미술심리치료 수업을 같이 들은 적이 있어요. 그 때는 아무도 저를 이해해 주지 않았어요. 엘리베이터도 없는 곳을 업혀 다니며 공부하느라 힘들었죠. 하지만 여긴 욕창이라면 안 거쳐본 사람이 없는 척수장애인들이라 이렇게 배려도 해주고 그런 게 편해요.”

앞으로 이들은 장애로 고민하는 척수장애인들이 잡을 수 없는 것은 버리고 누릴 수 있는 것은 누리도록 새 삶으로 인도할 것이다.

* 문의. 서울특별시척수장애인재활지원센터 ☎ 02) 786-8485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