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이후. ⓒ배은주

"아가씨 몸무게가 1kg만 더 나갔었다면 당신은 아마 그 자리에서 즉사 했을 것입니다."

응급실에 실려 가서 간신히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내가 맨 처음에 들었던 말이다. 퇴근길에 당한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 중앙선을 넘어오던 자동차가 신호를 기다리고 서 있던 내 차를 덮쳐 버렸다. 교통사고는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나는 그나마 목발을 의지해서 간신히 걸을 수 있었던 것도 영영 걸을 수 없게 되었으며 다시는 운전대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당신은 평생 누워서 지내야 합니다.”

찾아가는 병원마다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교통사고는 사고당시의 부상보다 후유증이 무섭다는 말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척추수술한 곳에서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다시 그 남자가 다가왔다. 예전의 간호를 해주던 그때의 모습으로 남자는 다시 나의 간호를 또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어머! 세상에! 저런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니? 이번에 퇴원하면 꼭 결혼해라.”

그 남자와 나의 결혼을 반대하던 모든 사람들이 그 남자의 그런 모습에 감동받기 시작했으며 우리의 결혼을 두 손 들고 환영하기 시작했다. 가장 어려울 때 옆에 있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 해도 좋을 것이라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평생 누워서 지내야 되는 몸으로 결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짐을 그 남자에게 지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나와 함께 투병생활을 해주었고, 하나님께서 감동하셨는지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통증 없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24시간 나를 괴롭혔던 통증에서 해방되면서 나는 다시 일어나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걸을 수는 없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감사했다. 나는 다시 결혼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결혼……. 그 두렵고 무서운 길을 이제는 갈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어떤 고난이 닥쳐도 내가 투병했던 일 년 반보다 더 나쁘지는 않을 것이며 어떤 시험이 오고 바람이 불어도 흔들림 없이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내가 지나온 모든 길, 그리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그 어떤 고난보다도 더 크고 강한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그 다음해에 나는 드디어 꿈결같이 곱고 예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을 수 있게 되었다.

3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서 장애인이 됐으며 초·중·고교 과정을 독학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96년도에 제1회 KBS 장애인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하면서 노래를 시작하게 됐고 97년도에 옴니버스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1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작품현상공모’에서 장려상을, 2006년 우정사업본부 주최 ‘국민편지쓰기대회’ 일반부 금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에 ‘2006 전국장애인근로자문화제’ 소설부분 가작에 당선되었다. 현재 CCM가수로도 활동 중이며 남녀 혼성 중창단 희망새의 리더로, 희망방송의 구성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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