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작업장 울타리의 나팔꽃. ⓒ한명숙

살아간다는 것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나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할 때 우리는 무엇엔가 쫓기듯 불안하고, 허무해지며, 지나치게 우울해 져서 삶을 포기하고 싶기도 하지만 세상이 바쁘다고 무작정 달려만 가는 우리는 정작 소중한 것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씩 일이 순서가 뒤바꿔 있을 때를 발견하곤 한다.

혼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세상인데도 우리는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기보다는 혼자 살아남는 법만 생각한다. 백성이 없는 왕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혼자만이 존재하는 세상, 혼자만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에도.

어쩌면 흘러나오는 문제들은 해결할 생각도 없이 이미 흘러 나와 버린 문제들에만 매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소유한 가장 귀중한 시간은 최선을 다 하는 바로 이 순간일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다 만나보려면 1초에 한 사람씩 만나도 192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보호작업장 울타리 외부 꽃밭. ⓒ한명숙

이른 봄에 기숙사로 이사 오면서 보호작업장 주변정리를 했다.

보호작업장 울타리를 새로 한 김에 그동안 가꾸지 않아 지천인 돼지감자를 파내고 작업장 주위로 100여 평은 꽃밭, 100여 평은 텃밭으로 만들었다.

캐내어도 캐내어도 조그만 알맹이들이 다시 솟아오르는 돼지감자를 보며 삶의 어떤 모퉁이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돼지감자를 날로 먹어보면 거의 맛이 없는 맹물 맛에 약간에 단맛이 있고 입에서 사각사각 씹히는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상추나 시금치 등을 심어먹을 요량으로 만들었는데 텃밭의 반도 쓰지 못하여 작년에 수해 때 몸살을 앓아 두 개 밖의 수확할 수 없었던 호박을 반으로 갈라 씨를 발라내어 종이컵에다 넣어둔 게 30여개나 싹을 틔웠기에 텃밭 주변으로 심고 중간에 옥수수를 심었다.

의외로 텃밭은 넓다. 골을 파고 비닐멀칭을 한 다음 시장에서 갖가지 모종을 사왔다. 오이 열개, 포도 열개, 가지 5개, 고추 70개, 아침마다 나가서 텃밭 가꾸는 재미가 솔솔하다.

보호작업장 울타리 외부 꽃밭. ⓒ한명숙

작년에 봉숭아 염색을 하다 씨를 모아 둔 것도 모종했다. 작업장 주변의 꽃밭에 봉숭아를 심고 풀 속에 묻혀 있을 때는 몰랐는데 나팔꽃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작업장 주변 공간이 있는 곳엔 모두 봉숭아와 나팔꽃을 심었다.

길가에서 코스모스도 몇 구루, 과꽃 등을 심어놓은 게 지금 알맞게 꽃을 피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주고 간다. 여전히 사람 사는 곳에 즐거움을 주는 것 중의 하나도 아름다운 꽃인 것 같다.

장애인보호작업장 울타리에 이어 간판도 새로 했다. 10여 년 전 장애인보호작업장을 지을 때만 해도 변두리에 지어 놓은 것이 개발되면서 읍내 한복판이 되었다. 앞에는 보건소 오른쪽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왼쪽에는 초등학교, 이젠 남부럽지 않다.

옥수수는 따서 친정인 제주도에 갈 때 갖고 갔고 상추며 오이, 방울토마토, 여름 내내 넘칠 정도로 먹었다. 꽃밭 사이로 봉숭아를 베어 낼 것을 짐작하고 김장배추도 100포기나 심었다. 겨울 동안 보호작업장 식구들 먹을 김치는 작업장 주변에 심은 배추로 담글 것이다.

새록새록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전하는 조그마한 땅이 고맙다.

사람은 추억에 정을 묻으며 살아갑니다. 추억은 동화속의 동심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을 좀먹기 시작한 무신경, 무감각, 무반응 등.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수많은 삶의 풍파를 겪고 난 후유증으로 깊이를 알 수 없을 때 살았던 날 보다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기에 예전의 나를 찾는데 힘겨운 싸움을 시도했습니다. 계획하지 않는 생활로 다가오는 혼란, 좌절들은 더 큰 상처로 다가서기를 주저하지 않았지만 오늘 하루도 나와 다른 이들의 감성에 사랑으로 노크해 보며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이길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오늘 내가 전해 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늘 깨어있는 자세로 모든 세상을 바라봅니다. 아픔과 좌절들을 글로 승화시켜 세상에 내보인 것이 뜻하지 않게 많은 상도 받고 많은 아픔들을 겪은 밑거름과 4년동안 장애인민원상담실에 근무한 덕분인지 2006년에는 위민넷 사이버멘토링 시상식에서 장애인부문 베스트 멘토상을 받았습니다. 이제 좀 더 넓은 세상으로 아름다운 두메꽃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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