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추리 꽃 >
희미해진 그리움이 선명해지는 칠월
바라만 보다 돌아선 아픔을 묻고
허공에 흩뿌린 웃음 비가 되는가?
만날 수 없으면서 간직한 기다림은
나비 한 마리 날지 않는 장대비 속
꽃잎을 펼쳐 웃는 주홍빛 원추리 같아.
젖은 비에도 화려한 매무새 구김이 없고
다시 열어 보이지 못할 깊은 속내를 닫아야할 때조차
초연함을 잃지 않는 꽃이여!
이생의 인연 돌돌 말아 비틀린 꽃잎 뚝 떨어지는 순간까지
행여 올까 빼곡히 고개를 내밀어 깨어있는
그 끝, 한 세상이여!
원추리 꽃이 비를 맞고 있습니다. 날개가 젖을 테니 나비도 날아들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고운 모습에는 구김이 없고, 접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서두르지 않는 초연함이 거룩해 보입니다.
원추리 꽃이 피고 지는 일상을 바라보며 들고나는 나의 하루, 일 년 사계절. 잎이 다 지고 가랑잎 위에 덮여 있어도 그 곳에 뿌리 깊은 내 사랑처럼 원추리가 묻혀있음을 압니다.
작년에는 100여송이가 피었다가 졌습니다. 올 해는 적어도 200송이는 필 것입니다. 오늘 피었다가 오늘 지는 꽃이지만 꽃대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꽃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꽃은 피어날 것이고, 꽃송이도 더 많이 맺힐 것이고, 더 많이 피어날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열매를 맺지 못하였지만 머지않아 열매도 맺힐 것입니다. 원추리 옆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한낮에 찍은 것입니다. 배경이 깜깜한 것은 밤이어서가 아니고 비가 내리고 해가 뜨지 않은 우중충한 날씨 때문입니다. 원추리 꽃은 밤에는 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