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추천을 받아 부산신학교에 입학을 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베데스다원이라는 장애인 선교회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선교회 활동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다녀보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교회 안에서 함께 목회를 하는 곳이 없었다. 그 무렵만 해도 휠체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교회도 별로 없었고 장애인 목회자도 거의 없었던 것이다. 장애인 목회자나 장애인에게 관심 있는 비장애인목회자도 기존 교회 안에서 목회하는 것보다 장애인교회를 하거나 장애인선교회에서 장애인은 장애인끼리 목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전제일교회 장애인 예배실. ⓒ이복남

그런데 장애인교회나 장애인선교회는 기존교회의 후원으로 운영이 되기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존교회의 후원이 끊겨 운영이 어려웠다. 그래서 장애인교회나 장애인선교회보다 기존교회 안에서 목사로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던 중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던 리빙스톤 선교사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다. 리빙스톤 선교사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명성을 떨칠 때 영국에 있던 그의 친구목사가 리빙스톤에게 편지를 썼다. “리빙스톤 우리교회 청년을 자네에게 보내서 좀 배우게 하고 싶은데 자네에게 갈 수 있는 길을 좀 가르쳐주게” 리빙스톤이 있는 아프리카는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 후 리빙스톤에게서 답장이 오기를 “친구야, 나는 길을 알고 오는 사람을 원치 않는다. 길을 몰라도 찾아서 오는 사람, 길이 없어도 만들어서 오는 사람을 나는 원한다”는 것이었다.

리빙스톤 선교사 이야기는 그의 의지를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 나도 길이 없어도 만들어서 갈수 있도록 기도해야지”

그런데 리빙스톤 선교사처럼 그도 장애인이 사역을 위해 길이 없어도 길을 만들어서 가겠다고 굳게 결심을 하고는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했는데 몸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의 발등이 오그라들어 하는 수 없이 목발을 짚고 다녔다. 그러자 누군가가 수술만 하면 낫는다고 했다. 여수 애향병원에서 다리 수술을 했다. 한 달쯤 있다가 퇴원을 하였는데 수술은 잘 된 것 같았다.

기도원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신철우 목사. ⓒ이복남

그동안은 다리가 많이 아팠었는데 수술 후 아프지는 않았기에 목발을 짚고 신방도 다니고 장애인들과 등산도 하는등 신이 나서 싸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집 신방을 다녀오다가 넘어져서 가까운 병원에 갔더니 너무 무리해서 신경이 끊어진 것 같다고 했다. 다시 여수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어서 가까운 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수술 후에는 보조기를 하고 목발을 짚고 다녔다.

대학 3학년 때 수술을 했는데 신학교 4년을 졸업하고는 서울로 갔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을 했던 것이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다음 어느 교회에서 “신목사님 우리교회에 장애인 담당목사로 일해 주십시오”하는 제안을 받고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생각했다.

장전제일교회(담임목사 김계희)에서 전도목사가 되어 한명씩 두명씩 교회로 전도해서 같이 예배하는 장애인이 지금은 17명이다. 교회의 영적 육적 지원도 많아져 지금은 하나님 은혜 안에서 잘 지내고 있다.

장애인들과 나들이, 오른쪽 첫 번째 휠체어 신철우 목사. ⓒ이복남

그런데 목발을 짚고 다니다가 어느 날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손목을 다쳤다.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목발을 짚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그 때가 2000년이였다.

일요일 아침이면 자신의 차로 일찍 집을 나서 장애인 두 명의 집으로 찾아가서 그들을 태우고 교회에 도착한다. 경증의 장애인은 혼자서 교회로 오기도 하고, 중증 장애인은 교회 봉고차로 수송을 하는데 일반신도들이 예배를 보는 시간 장애인 17명은 아래층에서 예배를 보고 그와 함께 성경공부를 한다. 평일에는 부산의료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는데 함께 물리치료를 받는 다른 장애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전도를 한다.

“우리교회를 오는 장애인들이 영적 혜택도 많이 받고, 국가적으로 복지적 해택도 많이 받아 영육 간에 평안을 누리길 기도합니다.” 신철우씨 이야기 끝.

(이 내용은 ‘문화저널21’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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