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배은주

“엄만 못 걸어?”

둘째 딸아이가 불쑥 내게 물어 왔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비교적 차분히 설명을 해주었다.

“엄마는 다리가 아파서 못 걸어.”

“그럼 언제 걸어?”

"엄마는 지금도 못 걷고, 앞으로도 못 걸어."

너무나 현실적인 대답 앞에 딸아이의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우리 예슬이가 이 다음에 커서 훌륭한 의사선생님 되면 엄마가 걸을 수 있을지도 몰라.”

풀이 죽어 있는 딸아이를 품에 꼭 안고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딸아이는 금방 생기발랄해져서 언니에게로 달려갔다.

5년 전에 큰아이도 내게 똑같이 물어 왔었다.

“엄만 못 걸어?”

남편과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아이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못해주고 서로 얼굴만 빤하게 바라보았었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물어 왔었지만 제대로 답변을 해준 기억이 없다. 그저 그때마다 적당히 얼버무린 것 같다.

그러한 이유로 둘째 딸아이가 물어 볼 때는 정직하게 꾸밈없이 사실적으로 대답해주리라 나름대로 준비해왔었다.

내가 나의 장애와 처음으로 맞닥트려 무척 아파했었던 사춘기 시절처럼 아이들은 커가면서 언젠가는 엄마에 장애와 맞닥트리게 된다.

나는 늘 아이 앞에서 나의 장애를 당당하게 드려 내놓으려 한다. 물론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 했을 당시 교실까지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약간의 두려움과 망설임이 있었지만 늘 언제나 학교에서 엄마를 보면 반가움에 뛰어와 안기는 아이를 보면서 그런 두려움이나 망설임을 조금이나마 던져 버릴 수 있었다.

내가 나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불편해 하지도 아니하며 그저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 하듯이 나의 아이도 엄마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불편해 하지도 아니하며 엄마의 가진 그대로를 사랑하기를 바란다.

아직까지 나의 아이들은 나의 휠체어를 그저 시력이 안 좋아서 착용하고 다니는 안경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늘 생각한다.

나의 장애가 아이들에게 장애가 될 수 있는 날이 올수도 있음을…. 아이들이 언젠가는 엄마의 장애로 인해 가슴앓이를 할 수도 있음을….

장애인인식개선이 되고 장차법이 제정되고 우리나라 복지가 좋아져도 친구의 엄마와 자신의 엄마가 분명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될 수도 있음을 나는 부인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날이 왔을 때 나는 아이들에게 당당해 말해주리라. 엄마는 온몸으로 부딪쳐 열심히 살았노라고…. 진정 땀 흘리고 아파하며 온몸으로 삶을 살아냈노라고, 엄마의 장애는 불편했었지만 부끄럽지 않았다고….

3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서 장애인이 됐으며 초·중·고교 과정을 독학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96년도에 제1회 KBS 장애인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하면서 노래를 시작하게 됐고 97년도에 옴니버스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1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작품현상공모’에서 장려상을, 2006년 우정사업본부 주최 ‘국민편지쓰기대회’ 일반부 금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에 ‘2006 전국장애인근로자문화제’ 소설부분 가작에 당선되었다. 현재 CCM가수로도 활동 중이며 남녀 혼성 중창단 희망새의 리더로, 희망방송의 구성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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