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조그만 가게를 하나 얻어 통닭집을 운영했는데 가게에 딸린 단칸방에 4식구가 살아야 했다. 아는 분이 단칸방에 4식구가 살기 힘드니까 큰애는 진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보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지 뒷바라지는 하겠노라며 눈물을 지으셨는데 동생들은 어렸고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진주로 갔다. 현 진주외국어고등학교였다.

신학생 시절의 신철우씨. ⓒ이복남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했는데 점점 다리에 힘이 없어졌다. 앞집의 하숙집 아줌마가 주일 아침이면 찾아왔다. “철우야 나랑 같이 예배당 가자. 니는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 아줌마가 하도 졸라대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끌려가기는 했는데 지금은 기억도 안 나지만 목사님 말씀이 하도 시답잖아서 아주머니에게 다시는 교회 가자는 말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어느 날 어머니가 난데없이 “교회에 한번 가보지” 하시는 게 아닌가. 그 때만해도 어머니는 절에 다니시는 독실한 불자였다. 어머니의 교회 가보라는 말이 생뚱맞기도 해서 그냥 흘려들었다.

학력고사를 쳤는데 점수가 낮아 갈만한 대학도 없었을 뿐더러 가고 싶은 대학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나중에 무엇을 하겠다는 꿈도 별로 없었고 남들보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면도 부족한 아이였다. 그래서 늘 물에 물탄 듯 우유부단한 삶을 살았다.

졸업을 하고 부산으로 내려와서는 재수를 한답시고 공부를 했는데 공부도 잘 되지 않았고 별 의욕도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도 마시고 허송세월을 하고 있었는데 자꾸만 교회 가자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러자 문득 예전에 어머니 돈을 크게 떼먹고 달아난 사람이 교회집사였다는 생각이 났다. 그것은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였음에도 그 생각이 나자 교회를 한번 가보고 싶었다.

신학교 동료들과, 둘째줄 오른쪽 두 번째 신철우씨. ⓒ이복남

근처 교회를 가 보았다. 목사님 설교가 끝나고는 새로 온 사람들은 앞에 나와서 인사를 하라고 했다. 그 무렵 다리는 점점 힘이 없어져 이제 절룩거리게 되었는데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가 않았다.

다음 주일에는 다른 교회를 찾아갔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 군데 교회를 가 보았으나 전부 나가서 인사하라고 하니 인사 안하는 교회를 찾아 다녔는데 그러다가 찾은 교회가 사직동에 있는 내성교회였다.

그것은 또 한 번의 삶의 전화기였으니 1989년 2월 비로소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것이다. 내성교회에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담임목사(한규석 목사)의 말씀은 그동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온 그에게 도전을 주는 말씀이었다.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라, 그래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을 찾아서 열심히 노력해 보고자 했다.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교회를 수단으로 여기면 안 된다고도 하셨다.

“그 이후 걸어가면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책을 읽거나 사람을 만나면서도 늘 하나님이 나를 향한 목적을 찾게 되었습니다.”

내가 할 일이 과연 무엇일까? 항상 물음을 가지고 기도하던 중 어느 재활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친구 어머니가 교회 집사였는데 그 재활원 원장님과 친분이 있어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던 것이다.

장애인들이 사는 곳이라기에 다른 장애인은 어떻게 사는가 싶어 따라 나섰던 것이다. 재활원에 도착하니 마침 예배시간이었다. 원생들이 예배하고 있는 예배당 구석자리에 가서 앉았다. 재활원에서는 다른 교회의 목사님들을 초빙해서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말씀을 들려주고 있었다.

집앞에서 동생과 함께, 왼쪽이 신철우씨. ⓒ이복남

“장애인이라고 건강한 사람에게 뒤져서는 안 됩니다. 그럴수록 더욱 마음을 강하게 해서 열심히 살아야 됩니다..” 등의 내용을 목청을 높여 강하게 말씀 하셨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한 장애인이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자기는 건강하니까 저런 소리하지, 내입장이 한번 되어봐라 그런 말이 나오나...”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나님 안에서는 우연히 없다고 하더니 오늘 내가 여기 따라온 이유는 저 말을 듣기 위해서인가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설교를 하니 저런 반발을 하는데, 내가 같은 장애인으로서 직접 신학공부를 해서 목회자가 되어 저들 앞에 말씀을 전하면 저런 반감은 줄어들지 않을까. 그 길로 내성교회 목사님을 찾아 가서는 재활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상의를 했다. 목사님은 좋은 생각이라며 신학교 갈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신철우씨 이야기는 3편에 계속

(이 내용은 ‘문화저널21’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