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으로 응원와준 아이들. ⓒ배은주

엄마라는 이름은 가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용기를 내야할 때가 참 많이 있다.

나는 오늘 거리 한복판에서 마치 옛날 영화 속에서 나옴직한 남자 배우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한 시간이 넘게 “택시! 택시!”를 외쳐 대야만 했다.

하지만 1,2분 간격으로 오고가는 택시들은 모두 내 소리를 듣고서 줄행랑을 쳐버리곤 했다.

그 광경을 보다 못한 지나가는 사람들이 함께 택시를 잡아 보았지만 택시 운전자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가버리곤 했다.

태어나자마자 태열 끼를 보였던 것이 자라면서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발전해버린 큰 딸아이를 보면서 나는 늘 마음이 아프다. 더군다나 요즘 음반녹음이나 방송이다 해서 바쁘게만 지내느라 딸아이의 상태를 자세하게 살피지 못한 나의 잘못이 상태를 악화 시킨 것만 같았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학교 엄마의 소개로 어느 한의원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그 한의원 일층에는 계단이 많아서 엘리베이터까지 접근하기 위해서는 일반 수동 휠체어를 타고 가야 했던 것이다. 내가 장애인콜택시를 불러 타고 내린 곳은 화곡사거리 던킨 도넛 가게 앞이었다.

“저... 간호사님 여기 왔습니다.”

친절한 간호사는 도착해서 전화를 주면 내려와서 엘리베이터를 탈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악속 했었다.

“어디 계시는데요?”

“네 알려 주신 데로 여기 일층에는 던킨 도너츠가 있고요. 지하에는 킹 노래방이 있네요.”

“아 네. 맞게 왔네요. 곧 내려가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간호사복을 입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낮선 곳에 대한 적잖은 두려움이 있는 나는 내리막길 한가운데서 꼼짝 않고 오고가는 사람들에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대략 난감한 사람들의 시선….

“어디 계시나요? 제가 가봤는데 안 계셔서...”

“국민 은행건너편에 있거든요”

“그럼 맞게 오셨는데 왜 안보이시죠?”

결국 30여분을 간호사와 숨박꼭질을 한끝에 내가 전혀 다른 곳에 와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도 한의원으로 갈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장애인콜택시 센터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하지만 대기 시간이 2시간 넘게 걸린다는 말만 할뿐 이였다. 할 수 없이 일반 택사를 타고 다시 한의원을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1시간이 넘게 딸아이 앞에서 도망가는 택시의 번호표만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게 될 줄은 미처 몰랐었다. 보다 못한 지나가는 행인이 내대신 욕을 해댔다

“저런 나쁜 ○들”

택시를 타고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 간호사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구세주를 만난 듯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내리막길에 택시를 잡고 있는 내가 안타까워 보였는지 길가에 있는 김밥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까부터 여기서 계속 택시를 잡고 있던데…. 차를 기다리는 거 같으면 가게 안에 들와 와서 기다리세요.”

아주머니는 매우 익숙한 솜씨로 내 휠체어를 밀고서 나와 딸아이를 가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화곡사거리와 화곡역 사거리는 헷갈려요. 여기도 던킨 도넛이 있고 거기도 던킨 도넛이 있거든요. 그리고 거기 맞은편에도 국민은행이 있고 여기도 국민은행이 있어요.”

김밥집 아주머니는 길을 잘못 알고 택시에서 내렸다는 내말을 듣고 친절한 설명까지 해주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잠시 후 택시를 타고 나를 데리러 온 간호사에 의해 무사히 병원으로 갈수 있었고 딸아이는 무사히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엄마와의 외출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내심 긴장한 탓이었는지 딸아이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잠든 딸아이의 손을 잡고서 기도 했다.

엄마를 두고서 달아나던 그 많은 택시들은 잊어 주기를

아니 아예 기억 하지 말아주기를….

그래도 엄마에게 다가와 함께 택시를 잡아주던 사람들과 가게 안에서 기다릴 수 있도록 배려해준 김밥 집 아줌마만을 기억해내기를….

니가 살고 있고 이 엄마가 살아가는 이세상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살만한 세상이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주기를….

그런 너의 생각들로 너 역시 곤경에 처한 누군가에게

서슴없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하지만 그날밤 나는, 나를 두고서 달아났던 그 수많은 택시들을 다시 만나는 꿈을 밤새도록 꾸었다.

3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서 장애인이 됐으며 초·중·고교 과정을 독학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96년도에 제1회 KBS 장애인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하면서 노래를 시작하게 됐고 97년도에 옴니버스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1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작품현상공모’에서 장려상을, 2006년 우정사업본부 주최 ‘국민편지쓰기대회’ 일반부 금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에 ‘2006 전국장애인근로자문화제’ 소설부분 가작에 당선되었다. 현재 CCM가수로도 활동 중이며 남녀 혼성 중창단 희망새의 리더로, 희망방송의 구성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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