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기의 돌사진. ⓒ배은주

분주한 이른 아침 언제나 에너지가 넘쳐나는 둘째 아기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둘째를 가졌을 때 잡곡밥을 지어 먹은 것 외에는 남다른 것을 먹은 것이 없는데 백일이 지나자마자 둘째 아기는 천하장사가 되어 버렸다.

10개월 됐을 때, 아기기어 달리기 대회에 나가 일등을 할 정도로 거침없이 용감한 우리 둘째 아기는 힘만 장사가 아니라 우는 소리도 어찌나 우렁찬지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아마도 가수의 길을 가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백일이 지나도록 옆집에서 아기가 있는 건지도 몰랐던 큰아이 때와는 너무나 다른 둘째 아기가 어느 날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침대 한켠에 앉아서 기저귀를 갈고 있던 내가 버둥거리던 아기의 발길질에 제대로 맞아 버린 것이다. 곧바로 나는 침대 밑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머리가 땅에 곤두박질 쳐 버린 것이다.

서울 하늘에서 찾아보기 힘든 별을 그날 나는 참 많이도 보았다. 그리고 내 이마에는 만화책에서 본 듯한 혹 덩어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병원을 찾았다.

“저. 머리를 다쳤어요.”

“어쩌다가 다쳤나요?”

“넘어졌어요.”

“어쩌다가요?”

“아기가 발로 차서요.”

“아기가? 이 아기가요?”

내 품에 앉아서 말똥거리는 아기를 가리키며 의사선생님이 물어 봤다. 의사선생님은 연신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저는 앉아 있을 때 바람만 세게 불어도 넘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아기가 조금만 버둥거려도 넘어진답니다.”

나는 이러한 설명을 굳이 하지 않았다. 내가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모든 일들을 설명하려들면 나는 하루 종일 참 많은 말들을 늘어놓게 되기 때문이다. 내 혹을 만져보고 나서야 의사는 엑스레이 촬영 지시를 내려 주었다. 한참 후에 결과가 나왔다는 간호사 말에 나는 다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큰일 날 뻔 했습니다만 다행히 큰 이상을 없습니다. 하지만 타박상을 많이 입어서 한동안 아프실꺼에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병원을 나왔다. 아기는 커가면서 조금씩 힘이 세지기 시작한다. 더 이상 아기를 안아 올릴 수 없는 순간이 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아기가 무서워지게 된다. 왜냐하면 엄마를 보기만 하면 달려들기 때문이다. 엉금엉금 기어 다니다가도 엄마만 보면 달려들고 뒤뚱 뒤뚱 걸음마를 하다가도 엄마를 보면 좋아 하며 그 품으로 달려들게 된다.

엄마가 자신을 지탱해줄 힘이 없다는 것을 알 때까지 아기는 열심히 엄마에게 달려들어 엄마를 넘어트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기는 이내 알게 된다. 엄마가 자신을 안아줄 힘이 없다는 것을 더 이상 엄마에게는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가 진정 무서운 것은 아기의 버둥거림에도 넘어 질수 있음이 아니라

아기가 더 이상 나에게 매달리지 않을 때이다.

나에게 신발을 신겨 달라고 하지 않고

혼자서 신발을 찾아서 신고 있을 때이다.

휠체어에 올라타고 있는 나의 신발을 찾아서 주워들고 서 있을 때이다.

내가 진정 무서운 것은 길에서 걷다가 넘어져도 울지 않을 때이다.

무릎에서 피가 나도 나를 보며 해맑은 웃음을 웃고 있을 때이다.

엄마가 자신을 일으켜줄수 없음을 알고 혼자서 툭툭 털고 일어나는 아기의 그 용감함을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있어야만 할때이다.

3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서 장애인이 됐으며 초·중·고교 과정을 독학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96년도에 제1회 KBS 장애인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하면서 노래를 시작하게 됐고 97년도에 옴니버스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1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작품현상공모’에서 장려상을, 2006년 우정사업본부 주최 ‘국민편지쓰기대회’ 일반부 금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에 ‘2006 전국장애인근로자문화제’ 소설부분 가작에 당선되었다. 현재 CCM가수로도 활동 중이며 남녀 혼성 중창단 희망새의 리더로, 희망방송의 구성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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