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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태어날 권리’는 존재하는가?

이명박씨의 장애인 낙태 발언 논란을 보고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7-05-15 17:47:23
최근 관객몰이를 한 할리우드 영화 '300'은 이런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소년이 태어났을 때, 모든 스파르타 인들처럼 검사를 받았다. 작거나 병약하거나 결함이 있었다면 그 아이 역시 폐기되었을 것이다.”

곧이어 카메라는 계곡 앞에 서 있는 심판관과 그의 팔에 안겨 있는 장애아기를 비춘다. 곧 폐기될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기의 표정은 해맑기만 하다. 계곡에는 이미 버려진 장애 아이들의 해골들이 즐비하다.

이것은 연출자의 상상력으로 묘사한 장면이 아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 사회는 장애영아를 폐기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야산에 버렸고 로마인들은 리베르 강에 던져버렸다. 특히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Lycurgus)법은 장애인은 태어나자마자 죽여야 한다고 명문화하였다.

이런 장애유아살해 풍습의 현대판이 장애인 낙태이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낙태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한해 60~80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나는데, 낙태 건수는 그 보다 2배가 넘는 150~200만 명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장애를 이유로 낙태된 수치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대다수 산모들이 이른바 ‘기형아 검사’를 받는다는 사실로 비춰볼 때 상당수의 장애태아가 낙태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현실에서 최근 유력 대선후보인 이명박씨가 ‘장애인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장애인들의 분노의 표적이 될 만도 하다. 하지만 한 정치인의 자기 표 갉아 먹는 발언만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장애인 낙태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합법적이고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장애인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이 있는 것도 아니잖는가.

문제의 본질은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장애가 없는 생명은 살리고 장애가 있는 생명은 죽이는 ‘기형아 검사’로 인간의 생명을 심판하는 의료 권력과 장애인 낙태를 당연시하는 비장애인 주류사회의 도덕 불감증이 더 큰 문제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합법화시키는 <모자보건법>의 낙태 조항이 존재하는 한 장애인의 낙태를 막을 길이 없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예외적인 낙태를 인정하고 있다.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임신한 경우, 임신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경우가 그 예외에 해당된다. 장애태아에 대한 합법적 낙태는 물론 첫 번째 예외조항에 근거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합법적 낙태는 대부분 장애를 이유로 한 낙태일 것이다.

더구나 합법적 낙태의 근거가 되는 태아의 장애와 질병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는 정신분열증, 조울증, 간질, 정신박약, 운동신경 질환, 혈우병뿐만 아니라 홍역, 풍진, 수두, B형 감염, 일본뇌염, 결핵, 한센병, 인플루엔자, 성병과 같은 가벼운 전염병도 낙태의 허용한계에 포함된다. 사실상, ‘기형아 검사’를 통해 사소한 질병이라도 발견되면 낙태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의사들은 책임 회피를 위해 보수적으로 ‘기형아 검사’를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기형아 검사’ 오류로 곤욕을 치른 의사들도 있다. 2006년 12월12일 서울 서부지법은 척추성근위축증(SMA)을 타고 난 아이의 부부가 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에게 1억6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담당 의사는 SMA 검사를 위한 산전검사를 철저하게 하지 않아 부모가 낙태를 선택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 반대의 경우도 있다. 최근 발간된 월간 'VOICE'에 이런 글이 적혀있다. “병원에서 뱃속의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판정을 받은 부모가 고민 끝에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났을 때 다운증후군이 아니었다. 만약 의사의 말을 믿고 유산을 시켰다고 하면… 누가 인간의 생명을 책임지고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정은, p.39)

상반된 두 부모의 태도는 논외로 치더라도 위 두 사례는 ‘기형아 검사’ 과정에서 의사들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가령 검사 결과와 달리 비장애인 아이가 태어났다고 해서 항의하는 부모는 없을 터이지만 검사와 달리 장애 아이가 태어나면 의사들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의사들이 어떤 태도로 검사를 할지는 자명하다. 그들은 조금만 의심스러워도 태아의 장애 가능성을 제기할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대부분 부모들은 극도의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어쨌든 아이를 낳든 죽이든 그것은 부모의 선택이다. 설령 검사 오류로 장애가 없는 태아를 죽였다하더라도 담당 의사가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이미 죽은 아이는 말이 없을 테니까.

그런데도 우리운동은 다른 것은 다 잘하면서 유독 우생학 문제에서만큼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황우석씨의 줄기세포 사건 때도 그러했지만 무분별한 장애인 낙태 문제에 대해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다. 태아 성별검사를 불법화하는 1987년 '의료법' 개정을 통해 ‘여성으로 태어날 권리’를 인정받은 여성운동과 대비된다.

이처럼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 생명을 폐기하는 우생학(인종개량학)이 고대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다만 장애 영아를 살해한 고대적 전략이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장애 태아를 살해하는 현대적 전략으로 바뀐 것뿐이다. 3,000년 전에는 태어나자마자 음습한 계곡에 버려진 생명들이 지금은 태어나기도 전에 병원 폐기물로 처분된다는 말이다. 이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태어날 권리’가 과연 존재하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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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윤삼호 (yoon610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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