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잠깐 밑으로 내려오시래요.”
“저녁준비 하느라 못 간다고 그래”
“그래도 내려오시래요. 뭐 사왔다고”
“뭘 사왔다고? 저녁 찬 꺼리라도 사왔나?
투덜거리며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차장 한 컨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남편 옆에 전동 휠체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게 뭐에요?”
“자 이제부터 이것 타고 당신이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다니라고 내가 사왔지”
몇 칠전부터 큰 아이 유치원 데려다 주기가 너무 힘들다고 바가지를 끓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전동휠체어를 타게 되면 운동을 전혀 못한다고 반대하던 남편이 전동휠체어를 사가지고 온 것이다.
그렇게 전동휠체어와 나의 만남은, 저녁 찬 꺼리 정도로 생각했던 탓에 마치 쇼크를 받은 듯 아니 복권이라도 당첨 된 듯 쉽게 가시지 않는 감동으로 다가 왔다.
나보다 큰아이가 더 좋아 했다. 이웃에 사는 아기 엄마의 전동휠체어를 붙들고 종종 다닌 적이 있었다. 큰 아이는 어느새 그 집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자랑 하는 라 분주했다. 아마도 전동휠체어를 붙들고 다니는 내 모습이 딴에는 좋아 보이지 않았었나 보다.
전동휠체어로 내가 제일먼저 시작한 것은 장보기 이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언제나 메모지와 볼펜을 꺼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나.
이 나이가 되도록 새우깡 하나에 얼마 하는지를 모르고 살았었던 나.
그만큼 물건을 산다는 의미는, 언제나 내가 원하는 물건을 사다줄 사람에게 얼마나 그럴듯하게 설명하느냐에 달려있었다. 가끔 쇼핑을 하기도 했지만 물건을 고르기만 할뿐 값을 치르거나 흥정을 하는 쪽은 언제나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전동휠체어를 사다 준지 정확히 보름 만에 남편은 후회하기 시작했다. 나를 만나기가 힘들어 졌기 때문이었다.
“아기가 바람을 쐬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바람을 쐬고 싶은 거 아냐?”
바람을 쐬고 싶은 것은 맞는 말이니 남편 말에 나는 토를 달지 않았다.
전동휠체어가 나에게 가져다 준 가장 큰 이로움은 육아에 있어서 자신감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이젠 아이가 아파도 걱정이 없었고. 큰아이가 그 토록 배우고 싶어 하던 발레도 함께 데리고 다니며 배울 수 있게 해주었다.. 마음대로 외출을 할수 없었던 탓에, 방안에서만 큰 아이를 키울 때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나는 둘째 아이를 키울 때는 집에 있을 날이 없었다. 어디든 데리고 다니며 보여주고 들려주었다.
전동휠체어를 발명한 사람을 나는 세종대왕 다음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1급 장애인이면 누구나 전동휠체어를 보급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런 제도를 만든 사람 또한 존경에 마지않는다. 가고 싶을 수 있는 곳을 마음대로 갈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이동권의 자유를 넘어 생각까지도 자유로워짐을 나는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내가 이토록 당당히 두 아이를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었던 일등 공신은 전동휠체어 임을 나는 부인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전동휠체어야! 감사해 그리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