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의 직업영역 확대를 목적으로 시각장애인 컴퓨터속기사 양성을 추진 했다. 나는 그 취지에 공감해 이에 응했고 이것이 내가 1998년 세계최초(장애인)로 국가공인 속기사가 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지금이야 시각장애인은 물론 장애 유형이 다른 후배 장애인 속기사들도 여럿 나와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컴퓨터속기분야가 장애인에게 과연 가능한가라는 의구심이 꽤 짙었다.

당시 컴퓨터속기분야에 도전한 시각장애인은 나를 포함해 단 두명, 그나마 나와 함께 시작한 친구는 5주가량 공부하고 그만 두었다.

내가 성공하지 못하면 직업영역 확대는 고사하고 아예 이 직종은 장애인에게 부적합한 것으로 결론 날 것이기에 부담이 매우 컸다. 이런 상황이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시각장애인인 나는 1998년 속기 국가 자격을 취득 했고 이후 컴퓨터속기전문 기업에서 일하기 시작 했다. KBS, MBC, SBS 등등의 자막방송과 국회, 의회, 법원, 등에서 활용되는 컴퓨터속기기기가 대부분 이 회사를 통해 개발, 보급 된 것들이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속기를?"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가 국가기술자격 1급을 취득한 것으로도 입증 되었 듯, 장애인도 분명 할 수 있다. 이러한 의구심은 장애인들의 능력과 보장구의 발전 등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다.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예는 직종, 장애 정도와 장애 유형에 관계없이 다양하다.

방송도 그렇다. 나를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지상파TV MC로 발탁한 PD님을 비롯한 방송 제작진도 나를 주 진행자로 낙점하고 나서도 방송 원고를 전달해 주는 문제로 많은 고심을 했다고 한다. 작가 중 한 사람을 나에게 보내 대본을 숙지 할 때 까지 읽어 주기, 대본을 녹음해서 오토바이로 보내주기, 스텝진 중 한 명이 녹음을 해서 직접 전달 등등.

그 때 까지 예가 없던 `장애인의 TV MC발탁' 사안 보다 이에 관한 회의 시간이 더욱 길었다고 하니 당시 그 분들의 고심이 짐작이 간다. 지금도 나는 "저 방송 원고는 어떻게 전달해 드려야 할지?"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시던 작가님의 기억이 또렷하다.

나는 그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 주었다.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나는 예나 지금이나 방송 원고를 이메일로 받아 화면읽기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내용을 파악하고 외워 방송한다. 비장애 방송인들이 방송하며 흘깃 흘깃 대본을 엿보는 것 보다 이렇게 방송에 임하는 것이 방송 내용의 깊이나 이해도를 더욱 넓히고 전달력을 높이는 데 있어 더 낫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나의 시각장애는 방송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 이해의 폭이 많이 개선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도 장애인을 보면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인정하는 건강한 사회, 장애인도 자연스럽게 섞여 함께하는 사회로의 발전을 위해서도 장애인에 대한 이해 특히 능력에 관한 이해의 폭이 좀더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준구는 초등학교 때 발병한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인해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 장애에 대해 자유케 됐고 새로운 것들에 도전해 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국가공인컴퓨터 속기사가 됐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지상파TV MC가 됐다. 대통령이 주는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수상했으며, ITV경인방송에서는 MC상을 수상했다. 현재 KBS, MBC, SBS 등 자막방송 주관사 한국스테노 기획실장, 사회 강사, 방송인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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