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는 4월 19일자로 버지니아총기사건을 자폐증과 연관시켜 보도했다. ⓒ에이블뉴스

버지니아공대 총기사건으로 ‘또다시’ 정신장애(인)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다중살인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정신장애인을 의심하는 건 이제 상식이 되었다. 대구 개구리소년사건이나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인근 정신병력자들을 일일이 조사했다. 대구지하철 화재사건 때는 방화범이 정신장애인이라고 오보가 난적도 있다. 영화나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현실에서도 끔찍한 사건은 곧 정신장애인의 소행이라는 도식이 굳어져 있다.

조승희씨 사건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외 언론은 조씨에게 ‘우울증’, ‘정신분열증’, ‘외톨이 신드롬’, ‘망상형 정신장애’, ‘반사회적 인격장애’, ‘편집장애’, ‘야스퍼스 증후군’이 있었다고 보도한다. 조씨는 걸어 다니는 종합정신병동인 셈이다. 언론이 보기에, 백주대낮에 32명이나 쏴 죽였으니, 이 정도는 ‘미친 놈’이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이성적인 너무나 이성적인’ 이 사회가 이 사건을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테니까.

이것도 모자라 조씨를 자폐인으로 몰고 있다. 경향신문(4월20일)은 조씨의 외가 쪽 할머니(85세)의 말을 인용하여, ‘어릴 때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85세 노인이 정말 ‘자폐증’이란 말을 먼저 끄집어냈는지, 아니면 ‘혹시 자폐증이라고 하던가요?’라는 기자들의 유도질문에 ‘그런 것 같다’라고 대답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같은 날 중앙일보도 ‘승희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는 현지 한인교회 목사의 말을 듣고 ‘자폐증을 앓았다’고 단정했다.

세계일보(4월19일)는 한술 더 뜬다. 이날 <설왕설래> 코너의 제목은 ‘자폐증’이었다. 글을 쓴 안경업 논설위원은 자폐증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욕구불만에 휩싸여 공격행동을 보이기도 한다’면서 ‘이번 대량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한 조승희씨의 특성 가운데는 자폐증의 공격성도 엿보인다’고 덧붙였다. 무식의 소치인지, 의도적 왜곡인지는 몰라도 그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3살 이전에 나타난다는 자폐증은 시선회피, 반복적 행동, 의사소통 단절, 특정 사물에 집착, 심각한 학습장애, 돌출행동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 그동안 수많은 의학자들이 수십년에 걸쳐 노력했지만 자폐증의 원인조차 알지 못한다. 아니, 사실은 딱 한 가지 밝혀낸 것이 있다. 의사들은 부모의 애정결핍이 자폐증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하더니, 그래서 수많은 부모들의 가슴에 못을 박더니, 이제 자폐증과 환경은 무관하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그래서 자폐증은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지 않는, 그냥 장애일 뿐이다.

이런 특징으로 볼 때, 조승희씨가 자폐인이었다면 이미 한국에 있을 때 그 증상이 나타나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터이다. 그런데 조씨는 사교성은 부족했지만, 미국에서 명문 공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 대학에 진학했다. 이런 이력만 보더라도 그는 자폐인과 거리가 멀다. 간혹 자폐인들이 수학이나 예능 분야에서 초인적 재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서번트(savant)라 불리는 자폐적 천재들이다. 하지만 서번트라할지라도 조씨처럼 종합적 사고력이 필요한 영문학을 전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언론이 아무리 ‘설왕설래’하더라도 조씨가 자폐인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럼, 조승희씨는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과 같은 정신질환자란 말인가? 하지만, 이것도 근거가 빈약하다. 그가 심각한 정신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이 의학적으로 확인된 바가 없다. 어려서 낯선 문화에 적응하느라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어디까지였는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가족 성명에서도 조씨가 “과묵했지만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했다”고 적혀 있을 뿐, 그가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받았다는 대목은 없다. 조씨에게 그런 병이 있었다면, 가족들이 왜 숨기겠는가? 결정적으로, 조씨의 부검 결과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4월 23일(미국시간) 뉴욕타임즈는 ‘조씨의 범행동기가 될 만한 심리학적 문제를 전혀 찾을 수 없다’고 보도했고,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 역시 ‘조씨의 뇌는 비정상이 절대 아니다(No Abnormalities Found in Cho's Brain)’는 검시관의 말을 제목으로 뽑았다. 이 말은 조씨의 정신적 상태에 대한 미국의 전문가가 밝힌 첫 공식 발언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그동안 여러 언론들이 보도한 조씨의 정신상태가 부풀려졌을 가능성은 높아졌다.

그런데, 부검 결과를 보도하는 두 신문의 논조가 재밌다. 뉴욕타임즈는 부검 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mysterious)’고 표현했다. 반면, 워싱턴포스트는 조씨의 행동을 정신의학이 아닌 사회학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서,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버지니아대학의 도널드 블랙(Donald Black) 교수는 조씨의 살인 동기를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에서 찾는 심리학적 관점을 비판하였다. 그 대신, 그는 조씨와 그가 맺고 있던 사회와의 관계를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조씨의 정신상태(mental condition)가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환경(social situation)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하루 전만 하더라도 조씨를 아모크(Amok : 이유없이 사람이나 동물을 마구 죽이는 말레이족의 신경정신적 특이성을 일컫는 문화인류학 용어)에 비유하던 신문이 부검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갑자기 논조가 바뀐 것이 얄밉긴하지만, 블랙 교수의 주장에 공감이 간다. 미국 언론 따라다니는 걸 좋아하는 국내 언론매체들도 이 참에 보도태도를 바꿀런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다시한번 강조하건대, 조승희씨에게 심각한 정신장애가 있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조씨를 정신장애인으로 단정하는 언론들의 보도태도를 보면, 정신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공포심이 얼마나 깊은 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미신들이 정신장애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고, 그들을 영원히 격리하고픈 ‘이성적인 너무나 이성적인’ 욕망을 자극한다. 푸코의 말처럼, 어찌하여 이성을 가진 인간과 비이성을 가진 인간 사이에는 이토록 공통의 언어가 없단 말인가.

몇몇 장애인 단체 활동가를 거쳐 지금은 부산에 있는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화의 정치>, <장애학: 과거, 현재, 미래>, <동정은 싫다>, <장애와 사회, 그리고 개인> 같은 장애학 서적을 번역했습니다. 장애학 특히 장애 역사에 관심이 많고, 지금도 틈틈이 자료를 읽으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류 학계가 외면하는 장애인의 역사를 현재와 연결하여 유익한 칼럼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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