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하게 세상으로 나론 둘째 아기. ⓒ배은주

언제나 혼자서 모노드라마를 하는듯 놀고 있는 큰아이를 보면서 둘째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일반사람들이 평생 한두 번 할까 말까한 전신마취를 열 번 가깝게 한데다가 척추에 대고 있는 인조 뼈에 대한 두려움과 첫아이를 가졌을 때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나 동생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다 봐줄게.”

모노드라마에 싫증이 난 큰아이가 졸라대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5년 만에 둘째가 생겼다. 한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던 탓에 이번에는 장애인을 많이 진료해 보았다는 조그마한 산부인과를 찾았다

“움직여도 됩니다.”

진찰대에 올라가다 떨어트린 신발을 주워들어 신겨주며 의사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네? 정말 움직여도 되나요?”

“그럼요 임신은 병이 아닙니다. 똑같이 일상생활을 하셔도 됩니다.”

“다시 열 달을 꼼짝없이 누워서 지내게 된다면 큰아이는 누가 돌보나 다시 열 달 동안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해야 하나” 여러 가지 일들이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는데, 움직여도 된다니 똑같이 일상생활을 해도 된다니 나는 너무나 기뻤다.

더군다나 그 병원에서는 진찰대에 올라가는 것도 편안히 올라 갈수 있도록 진찰대의자를 최대한 낮춰주는 배려와 무엇보다 담당 의사선생님의 편안한 진료로 인해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상적인 태교는 엄마의 마음이 즐겁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임신기간 동안 편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진료해준 의사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지금도 문득 문득 가슴속에서 고개를 내밀곤 한다.

큰아이는 유난히 소심하면서 말수가 적다. 아마도 내가 임신 했을 당시 늘 불안해하며 집안에서 조용한 음악만을 듣고 지낸 것에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둘째를 임신하고 있는 내내 나는 무척 바쁘고 분주하게 지냈다. 큰아이를 데리고 발레를 배우러 다니기도. 저녁이면 붙들고 앉아 한글을 가르치기도 했다.

아기는 아마도 뱃속에서 “우리 엄마는 무척 시끄러운 사람이구나”라고 생각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가장 좋은 태교는 클래식 음악이나 자연의 소리보다 가족들 간의 화목한 대화소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태교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지만 먹거리만은 좋은 것으로 열심히 챙겨 먹었다. 특히 임신하고 있는 상태에서 엄마가 먹는 것은 그대로 태아와 연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곡밥과 야채 위주로 식단을 꾸몄다.

출산이 가까워 오자 큰아이 때와 똑같이 호흡곤란 증세와 여러 가지 통증이 나타났다.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숨쉬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조금씩 움직이라는 의사선생님의 지시대로 간단한 가사일을 운동처럼 해나가며 출산일을 기다렸다.

마침내 열 달을 무사히 채우고 수술하기 위해 입원을 했다. 수술대위에 휘양 찬란한 불빛을 받으며 누워서 정신이 흐릿할 때까지 나는 의료진의 급박감 넘치는 대화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 환자 전신마취 기록은?”

“몸무게는?”

“척추에 핀이 있다고?”

“안 돼 안 돼 반반 아니 정상인의 반반 주사해.”

차츰 차츰 의식이 없어지는 순간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이 아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세상 어느 것도 얻으려 않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아이를 키울 수만 있다면 세상 어느 것에도 마음 주지 않겠습니다.

제가 무사히 눈을 떠서 세상을 다시 살아 갈수 있게만 된다면

어떤 삶이 내게 와도 불평하지 않고 감사히 살겠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사랑하신 만큼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진정 그렇게 살겠습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회복실에서 내가 눈을 떴을 때 간호사가 하는 말을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3.5kg에 건강한 공주님을 낳으셨습니다.”

나는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 그만큼 자라준 아기가 너무나 고마워서 수술 후에 통증도 잊어버리고,오랜 시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창밖에는 봄이 뒤돌아서 가려다 말고 대지를 축복하는 단비를 내려주고 있었다

3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서 장애인이 됐으며 초·중·고교 과정을 독학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96년도에 제1회 KBS 장애인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하면서 노래를 시작하게 됐고 97년도에 옴니버스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1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작품현상공모’에서 장려상을, 2006년 우정사업본부 주최 ‘국민편지쓰기대회’ 일반부 금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에 ‘2006 전국장애인근로자문화제’ 소설부분 가작에 당선되었다. 현재 CCM가수로도 활동 중이며 남녀 혼성 중창단 희망새의 리더로, 희망방송의 구성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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