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말이 말같이 안 들려? 돈 있는 거 다 꺼내보라니까!”

언니들이 인상 쓰며 다그치자 겁이 난 민희는 할 수 없이 주머니에서 2천원을 꺼냈습니다.

“이, 이것뿐이 없어요. 정말이에요.”

“너, 뒤져서 더 나오면 백 원에 한대씩 맞을 줄 알아!”

민희는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엄마가 비상금으로 주신 만원이 가방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꼼짝없이 만원어치나 얻어맞겠구나, 하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엉엉 우는소리가 나옵니다.

“가방 이리 내!”

민희가 울면서 가방을 막 벗으려는데 뒤에서 빵빵,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악새앵들, 뭐어야? 왜 그러어는 거야아?”

어눌하지만 큰 목소리가 들려오자 언니들은 후다닥 놀라 뒤를 돌아다봅니다. 민희도 뿌연 눈물 사이로 얼른 돌아봅니다.

저만치 온누리 언니가 길옆에 차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운전하며 지나가다 민희가 우는 것을 보았나 봅니다. 민희는 이때다 싶어 재빠르게 ‘언니!’하고 부르며 온누리 언니의 차가 있는 데로 달려갔습니다. 온누리 언니가 차에서 내리자, 온누리 언니를 본 중학생들은 ‘칫, 재수 없어!’하더니 그냥 가버립니다.

온누리 언니는 눈물범벅이 된 민희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면서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민희는 그만 울컥해져서 눈물을 더 펑펑 쏟아냈습니다.

민희는 벌써 두 시간째 온누리 대여점에 앉아 만화책을 들고 있습니다. 온누리 언니가, 오빠가 돌아올 때까지 마음껏 책을 봐도 좋다고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민희 눈길은 책에 가 있지 않고 언니만 졸졸 따라다닙니다.

언니는, 책을 빌려가는 사람에게 직접 돈을 받지 않고 카운터에 놓인 그릇에 놓고 가라고 합니다.

“한 권에 7백원, 맞죠?”

6학년 쯤 되어 보이는 오빠가 그릇에 동전을 놓고 나갑니다. 그걸 유심히 쳐다보던 민희가 얼른 언니한테 일러 줍니다.

“언니, 저 오빠가 책 두 권 갖고 나갔어요.”

그러자 언니는 웃으며, 오래된 책은 서비스로 그냥 빌려 준다고 했습니다. 민희는 그런 언니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온누리 대여점에는 헌 책이 절반인데 그 헌책들을 다 공짜로 빌려 준다고 합니다. 책상 위에 놓인 바구니 안의 사탕도 책 읽으면서 먹으라고 둔거라고 합니다. 여기저기 놓여있는 화분들도, 대여점 안이 너무 건조하지 않도록 또 공기가 맑아지도록 일부러 잎이 큰 식물로 골라서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드을이 며엋 시간 씩 책으을 읽느은데, 고옹기가 나쁘며언 아안 되자아나(아이들이 몇 시간씩 책을 읽는데, 공기가 나쁘면 안 되잖아).”

온누리 언니 말을 듣고 민희는 ‘이 언니, 바보 아냐?’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다른 가게에서는 어떻게든 이문을 많이 남기려고 아이들 건강 같은 건 염려하지 않을 게 분명한데….

하지만 분명 언니가 바보는 아닙니다. 손과 발이 많이 불편한데도 운전을 하고 컴퓨터도 능숙하게 다룹니다. 민희가 땅콩이라고 놀림 받는 게 제일 속상하다고 하자 언니는, 언니가 학교 다닐 적 얘기도 해 주었습니다.

“나아도 하악교 다닐 때 칭구우들한테에 노올림 마아니 받았써어(나도 학교 다닐 때 친구들한테 놀림 많이 받았어.)"

언니는 빨리 걷지 못해서, 글씨를 잘 쓰지 못해서 불편한 것은 참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니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말하는 속도가 느리다고, 친구들이 ‘말이 안 통하는 아이’라면서 따돌리는 건 정말 서러웠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서로 키가 다르고, 얼굴이 다르고, 능력이 다릅니다. 그런 건 단지 ‘차이’일 뿐인데, 그런 차이를 개성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언니는 말했습니다. 언젠가는 ‘차이’가 ‘개성’이 되는 날이 올 것을 믿기에, 언니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도 다녔고 지금은 도서대여점을 하면서 소설을 쓴다고 합니다.

‘맞아. 나도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는 무서워서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언니가 말하는 것도 자꾸 들으니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겠고….’

민희 눈앞에 갑자기 정원이가 떠오릅니다. ‘이 외모만 따지는 녀석!’하며 주먹이 한대 날아올 것 같습니다.

‘나는 언니랑 말도 한번 안 해보고 이상한 사람이라며 싫다고 펄펄 뛰었어. 단지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다니 정말 멍청한 짓이야. 나도 땅콩이란 소릴 들으면 화부터 내면서….’

민희는 자기가 한 말을 온누리 언니가 알게 되면 얼마나 속상할까, 걱정이 됩니다.

‘설마 그 녀석들이 내가 한 말을 온누리 언니한테 벌써 고자질하지는 않았겠지?’

그때 언니가 민희를 부릅니다. 집에 전화해 보고 오빠가 와 있으면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합니다. 언니가 그렇게 살뜰히 민희를 걱정해 줄수록 민희는 점점 더 언니한테 미안해집니다.

온누리 언니랑 민희가 이층 계단을 막 내려섰을 때 민희는 계단 맞은 편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고 있는 정원이네 아줌마를 보았습니다. 순간, 정원이도 같이 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민희는 얼른 상가 입구로 빠져 나가려고 몸을 홱 돌렸습니다. 그러다 그만 정원이와 딱 맞부딪쳤습니다.

정원이는 온누리 언니랑 민희를 번갈아 보면서 이상한 듯이 눈을 껌벅거립니다.

“민희, 네가 왜 여기에 있니? 그것도 온누리 언니랑 같이?”

마침 온누리 언니가 정원이네 아줌마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민희는, 한껏 손을 높이 뻗어 정원이 입을 막고는 있는 힘을 다해 계단 옆에 있는 화장실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쉬쉬! 제발 정원아, 어떻게 된 일인지 내일 학교에서 설명해줄게. 네가 왜 화를 냈는지, 이젠 나도 알겠어. 정말 많은 걸 깨달았다고. 그러니 제발 언니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줘.”

정원이가 화를 낼까봐 지레 겁먹은 민희가, 정원이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내리며 애걸복걸 빌자, 정원이는 참았던 숨을 후~ 몰아쉬더니 정말로 궁금한 듯이 묻습니다.

“그래도 딱 하나는 물어봐야겠다. 너, 온누리 언니가 이제는 안 무섭니?”

민희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쑥스러운 듯 씨익 웃으며 말합니다.

“응. 지금은 네가 제일 무서워.”

<작은 세상>의 작가 최현숙은 첫돌 지나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대학원을 졸업하며 시를 접었다가 2002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2005년 구상솟대문학상 본상(시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동화작가·콘티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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