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학교에서 만난 정원이와 민희는 보자마자 서로 언성을 높였습니다.

“왜 미리 말을 안했니, 그 언니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민희가 큰 소리로 쏘아대자 정원이도 기다렸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습니다.

“뭐? 너야말로 그렇게 가는 법이 어디 있어? 넌 예의도 모르니?”

벌써 어제 일을 들었는지, 은혜까지 나서서 정원이를 두둔했습니다.

“민희야. 그 언니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야. 뇌성마비 후유증으로 근육이 마비되어 그런 거야.”

그렇지만 민희는 어제 놀란 일이 아직도 분한지 좀처럼 마음을 풀려하지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난 거기 다시 안 가. 그 언니,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얼굴도 쳐다보기 싫단 말이야.”

민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원이가 와락 덤벼들며 소리 질렀습니다.

“야, 최민희! 난 네가 그렇게 외모만 따지는 녀석인 줄 정말 몰랐다.”

정원이는 정말로 화 나 있었습니다. 민희 짝인 승진이랑 다른 친구들이 얼른 민희와 정원이 사이를 가로막지 않았다면 남자애들한테만 써먹던 ‘공룡발차기’가 날아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민희도 지지 않고 씩씩거리며 대들었습니다.

“정원이 넌, 그 언니가 장애인이니까 장사 잘 되게 해주려고 온누리 대여점이 좋다는 소문을 낸 거지? 은혜, 너도 마찬가지고. 그렇지만 다른 대여점보다 뭐가 더 좋아? 가게도 좁고 이층인데다 주인까지 이상하고. 오히려 ‘반딧불 대여점’이 훨씬 좋다, 뭐! 아주머니도 예쁘고 상냥하고.”

화가 나서 아무렇게나 내뱉는 민희 말에 정원이는 ‘기가 막혀, 내가 다시 너랑 말하나봐라!’하며 돌아앉아 버렸고 은혜도 마음을 다쳤는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영이와 빛나가 어떻게든 친구 사이를 다시 붙여주려고 나섰습니다.

“민희야, 그건 오해야. 정원이가 온누리 대여점을 알기 전부터 우린 거기 가서 숙제도 하고, 책도 빌렸는걸. 온 누리 책방엔 다른 대여점에는 없는 책들이 아주 많거든.”

“비싼 ‘과학학습백과전집’ 같은 것들도 있어. 거기 가서 숙제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온누리 누나가 가르쳐 주기도 한다고.”

그래도 민희가 화를 안 풀자 승진이까지 끼어들었습니다.

“온누리 누난 정말 친절해. 자주 다니다보면 너도 알게 될 거야. 그 누나가 얼마나 명랑하고….”

승진이까지 정원이 편이 되자 화가 난 민희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몰라, 몰라! 난 무조건 싫어! 다신 거기 안 가! 너희들이나 실컷 가서 책 많이 읽고 공부하면 되잖아!”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다시 이틀이 지났습니다. 그 이틀 동안 민희는 학교가기가 병원가기보다 더 싫었습니다. 짝꿍인 승진이는 여전히 민희한테 곰살궂게 잘해주지만 정원이와 은혜는 쉬는 시간이나 급식을 먹으면서도 이보란 듯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민희는 자기가 아직도 화가 나 있다는 걸 알리려고 하루 종일 얼굴을 찌푸리고 지내는데, 정원이와 은혜는 책을 읽으면서 종종 행복한 표정을 짓거나 심지어는 킥킥 웃기까지 해서 민희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민희를 속상하게 하는 건, 방과 후에 같이 놀 친구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에이, 왜 우리 엄마․ 아빠는 걸핏하면 늦게 오시는 거야. 오빠는 8시가 넘어야 학원에서 올 테고….’

민희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십니다. 그래서 민희 엄마는 민희를 8시가 넘어서 끝나는 과외에 맡겼는데, 오늘처럼 갑자기 과외 선생님이 무슨 일이 있으시다면 서 수업을 일찍 끝내버린 날은 완전히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듭니다.

‘빈 집에 혼자 들어가는 건 정말 싫어. 누구네로 놀러 갈까? 정원이? 은혜?’

자기도 모르게, 평소에 자주 놀러가던 친구네 집을 생각하다가 민희는 얼른 고개를 저었습니다.

‘치! 아냐. 그 애들 하고는 다시 안 놀 거야.’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민희를 불렀습니다.

“야, 땅콩!”

‘땅콩’은 민희가 제일 싫어하는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민희 키가 작다고 오빠가 놀려댈 때면 꼭 꺼내드는 말입니다. 학교에 들어와서도 별명은 늘 땅콩이었습니다.

“뭐야? 땅콩?”

화가 난 민희가 홱,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뒤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언니 둘이 서 있었습니다. 둘 다 키가 크고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 꼭 끼는 가죽바지를 입은 모습이 평범한 여학생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너, 이리 좀 와 봐!”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부르는 모습에 겁먹은 민희는 당장 그 자리에서 달아나고 싶었지만, 그러다 잡히면 더 혼이 날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주춤주춤 다가갔습니다.

“몇 학년?”

“3학년이요.”

“이름은?”

“최민희요.”

언니들이 까르르 웃습니다.

“최민희가 아니라 초미니로구나.”

가슴 아픈 별명을 족집게처럼 알아맞히자 민희는 그만 울컥 화가 치밀어 큰소리로 대들고 싶습니다.

‘뭐라고? 키 작은 게 잘못이야? 중학생이면 언니처럼 굴어야지, 키 크다고 함부로 남을 비웃어도 되는 거야?’

이런 민희의 속마음이 얼굴에 드러나는지, 그 중 한 언니가 ‘어? 이 꼬마 인상 쓰는 것 좀 봐라?’하며 자기가 더 인상을 씁니다.

“살살 다뤄. 남들이 보면 우리가 깡패인 줄 알겠다. 상냥하게 말해야지.”

그러면서 다른 언니가 민희에게 손을 내밉니다.

“야, 꼬마야. 돈 좀 빌려 줘. 나중에 돈 생기면 갚을 테니 꾸어 달란 말이야.”

과연 착실한 학생들이 아니었습니다. 민희는 겁도 나고 돈을 뺏기는 것도 억울해서 찔끔찔끔 눈물을 흘립니다.

<작은 세상>의 작가 최현숙은 첫돌 지나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대학원을 졸업하며 시를 접었다가 2002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2005년 구상솟대문학상 본상(시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동화작가·콘티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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