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교수는 손가락 점자로 세상과 만난다. ⓒ후쿠시마

‘동양의 헬렌 켈러’로 불리는 후쿠시마 사토시 교수(44)가 3월 13일(화), 우리나라를 방문한다. 그는 일본열도를 인간승리의 감동에 빠뜨린 인물.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하지만 2001년 도쿄대 교수가 된 이래,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내의 배리어프리 팀을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 방문은 이번이 처음. 우리와의 인연은 한국인 제자와의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쿠시마 교수의 지도에 힘입어 한국인으로선 도쿄대 첫 장애인 박사가 된 전영미씨. 책을 통해 후쿠시마 교수의 삶과 의지에 감명을 받았던 그녀는 특별강연회가 열리자 열일 제쳐놓고 달려갔다. 그리고 손가락 점자로 대화를 나눴다. 낯설었지만 1급 시각장애인으로 점자에 익숙한 그녀는 이 독특한 대화 방식에 빨리 적응했다. 그 때 받은 명함 한 장은 그 후 3년 뒤, 그들을 사제지간으로 이어주었다.

전영미씨는 후쿠시마 교수를 인생의 후견인으로 소개한다. “시각장애인이고 외국인인 제가 일본에서 공부하는데 어려운 일이 어디 한둘이었겠어요. 그 때마다 교수님은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어요.” 그녀는 덧붙인다. “사람들은 성공한 장애인이라고 하면 끈기, 도전, 강인함 그런 것만 떠올리죠. 저도 놀랐는데요. 후쿠시마 교수님은 호기심이 많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세요. 언젠가 모임이 있었는데 누군가 졸고 있었나봐요. 그런데 교수님은 대화하고 식사하느라 정신이 없으셨을텐데도 이런 사정을 훤히 알고 조는 사람에게 농담을 날리셨죠. 살아있냐?”

고통을 달관한 그의 여유는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암흑에서 건져올린 것이다. 아홉 살 때 심각한 눈 질환으로 시력을 잃은 후쿠시마 교수는 고교 2학년이던 18살 때 청각까지 잃는 고통을 겪는다. 빛을 잃었을 때는 소리를 통해 세상과 대화할 수 있었지만 소리마저 빼앗겼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상실감에 빠져들게 되었다.

세상과 단절된 절망으로 울고 지내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손가락 점자를 고안해냈다. 이것은 두 사람이 손가락을 겹치고 마디에 점자를 찍어서 대화하는 방식으로, 익숙해지면 상대방과 말하는 속도 그대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후쿠시마 교수는 다시 세상과 만날 수 있었다. 대학에 진학했고 교수도 되었다. 결혼도 했다. 통역 도우미들이 전하는 손가락 점자로 보고 들으며 강의도 한다. 시력과 청력은 잃었지만 말은 할 수 있기에 강의 진행은 원활하다.

2002년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된 ‘손가락 끝으로 꿈꾸는 우주인’이라는 자전 에세이집에서 그는 말한다. “사람들은 '덕분에'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인사치레가 아니라 난 정말 온몸으로 느낍니다. 안 보이고, 안 들려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외출 한 번 못하는 내 장애 덕에 주변의 고마움을 늘 가슴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덕분에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계 시청각장애인연맹 아시아지역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우리나라 시청각 중복장애인들의 재활과 교육에 관심이 많다. 작년에는 시청각 중복장애인 조영찬씨를 일본으로 초청했다. 일본 시청각장애인대회에 참가한 조영찬씨는 시청각 중복장애인의 자립을 위해서 적절한 지원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우리나라에선 시청각장애인들이 낄 곳이 없어요. 시각장애인도 아니고 청각장애인도 아닌데 거기 끼여지내느라 눈치밥만 먹는 거죠. 그런데 일본에는 우리들의 특성을 이해하는 단체가 있고, 통역이나 다른 지원이 활발하니까 사회활동이 가능한 거죠.”

일본 시청각장애인협회는 설립한지 2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후쿠시마 교수와 또 한 명의 시청각장애인의 대학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시작된 봉사단체가 그 출발이었다. 그 자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시청각 중복장애인들도 적절한 지원만 있다면 능력이 발휘될 수 있다. 후쿠시마 교수는 아시아 지역 시청각장애인에게 비전을 제시하길 원한다.

이번 방한은 우리나라 ‘시청각장애인 자립지원회’ 결성식에 발맞춘 것이다. 후쿠시마 교수는 한국 시청각 중복장애인들이 힘을 합쳐 스스로 자립지원회를 결성하게 된 것이 누구보다 기쁘다. 일본 시청각장애인협회 관계자 11명도 동행해서 우리나라 시청각장애인들과 교류를 나눈다. 나사렛대는 그를 맞아 3월 15일(목), ‘시청각 중복장애인의 교육과 재활’을 주제로 국회 소회의실에서 세미나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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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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