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3월 6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참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7년 동안의 기나긴 투쟁에서 우리들이 쟁취한 성과이기에 감회가 새롭다. 장애계를 비롯한 많은 단체들과 사람들이 이 법의 제정을 위하여 추운 날도 더운 날도 길바닥에서 전경들과 싸워가며, 그 잘난 국회의원 나리들을 설득해 가며 장차법 제정에 앞장섰던 모든 동지들에게 용감하게 잘 싸우셨고 우리 역사에 길이 남는 일을 해내셨노라고 아낌없는 박수를 치고 싶다. 짝~짝~짝!

장차법이 통과됐다고 해서 과연 장애인 차별이 없어질까? 아니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조만간 종식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져보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장차법에는 처벌 조항도 있다고 한다. 이 법에서는 고의적으로 장애인을 차별한 사람은 벌금은 물론이고 심하면 실형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장차법이 있다고 해서 장애인차별이 완전히 사라지긴 힘들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법이 있다고 해서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성매매 특별법이 존재한다고 해서 성매매가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장애인차별 또한 완전히 사라지게 하진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가 그토록 장차법 제정에 목숨을 걸었을까? 세계 어느 나라 역사 속에서도 장애인들은 항상 차별당해 왔었다. 우리가 그토록 우러러보는 미국의 역사 속에서도, 일본의 역사 속에서도 사회복지 체계가 완벽하다는 유럽의 역사 속에서도 장애인들은 가흑한 차별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성경에 나오는 구약시대에도, 중세시대에도, 산업혁명기 때도,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도 장애인들은 제일 먼저 감금당해야 했으며 억울한 죽음 또한 감수해야 했다.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잣대를 갖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의 잣대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들에 관해 호기심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어릴 때 E.T란 영화를 본 적 있다. 그 영화 속에 ‘엘리엇’ 소년은 자신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인 외계인 E.T를 보고 강한 호기심을 느꼈고 그런 호기심으로 인해 E.T와 우정을 쌓는다. 그러나 뒤늦게 E.T의 존재를 알게 된 어른들은 E.T를 잡아서 죽이려 한다. 물론 허구 속의 이야기지만 자신의 모습과 다른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 대하느냐는 그 다른 존재의 생존권이 달려있는 문제라고 본다. 친화적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생명의 존폐를 좌우한다.

장애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위의 예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자신과 다른 존재에 관해 무조건적인 편견과 적대감이 다른 존재에 관한 차별을 부른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다르다. 그렇지만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사람이란 면에서 같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느냐가 다를 뿐이다. 손을 쓰지 못해서 입으로 먹는 사람도 사람이고 걷지 못해서 손과 발을 사용해 이동하는 사람도 사람이다. 입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손, 발로 기어 다닌다고 해서 사람인이상 사람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놀림을 다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그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의미는 장애인차별을 범죄로 성립 되었다는 뜻이다. 범죄를 저지르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 이전까지 그 누구도 장애인을 차별했다고 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벌을 받아야 한다. 장애인 자신들도 이제는 무엇이 자신에 대한 차별인가를 알아야 한다. 알고 지적할 수 있어야만 비장애인들이 무엇이 차별인가를 깨닫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는 다른 존재에 관한 이해와 존중에 있다. 지구에는 사람도 있고 동물도 있다.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꽃도 있고 벌레도 있다. 이들은 모두 지구상에서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지구를 지배하면서 차별들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자연을 파괴했고 전쟁을 일으켰다. 그런 전쟁 속에서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지배했다. 지금 이 시간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자신들의 생각과 모습이 다른이 들과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고 배척해 왔기에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좀 다른 얘기로 흐른 것 같지만 결국은 같은 문제일지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기에 서로가 서로를 차별해 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그렇게 가겠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계기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박정혁 칼럼리스트
현재 하고 있는 인권강사 활동을 위주로 글을 쓰려고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며 느꼈던 점, 소통에 대해서도 말해볼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애인자립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들과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융화되기 위한 환경을 바꾸는데 필요한 고민들을 함께 글을 통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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