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가 되면서 민희는 학교생활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좋아하는 승진이가 짝이 된데다 바로 옆 조에는 오정원과 이은혜가 앉았습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아이들 틈에서 말없이 지내던 1학기와 달리, 화장실 갈 때도, 급식시간에도 함께 몰려다니며 재잘재잘 이야기 나누는 게 정말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민희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친구들이 날이 갈수록 조금씩 이상해졌습니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전처럼 민희랑 놀아 주지도 않고 무슨 말을 물어도 그저 건성으로 대답하곤 합니다.

그 날도 쉬는 시간이 되자 민희는 얼른 일어나 옆 조로 갔습니다.

“정원아, 화장실 가자.”

하지만 정원이는 책에 얼굴을 묻다시피 고개를 숙이고 읽고 있다가 ‘응? 아, 으응….’하면서 민희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치, 싫으면 관 둬. “은혜야, 화장실 안 갈래?”

기분이 상한 민희가 은혜 쪽으로 휙 고개를 돌려 말하는데 이번엔 은혜가 갑자기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무시당한 것 같아 몹시 화가 난 민희는 그만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습니다.

“너희들, 정말 왜 그래? 내 말이 말같이 안 들리니?”

그제야 은혜랑 정원이가 고개를 들고 민희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하지만 아직도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은혜가 변명을 했습니다.

“아, 미안! 여기 너무 우스운 얘기가 나와서….”

“뭐니? 대체 얼마나 재밌는 책이기에 바로 옆에서 하는 말도 안 들려?”

민희는 은혜가 들고 있던 책과 정원이가 보던 책을 한꺼번에 빼앗았습니다. 책 표지를 보니 한권은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만화책이고 다른 한권은 서점 판매 1순위인 유명한 동화책이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사면서 너희끼리만 갔단 말이야? 나한테 같이 가자는 말도 안하고….”

민희가 서운해 하자 정원이가 펄쩍 뛰며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긴? 이거 다섯 권짜리 전집인데, 이렇게 비싼 동화책을 우리 엄마가 사 주실 것 같니?”

“이 만화도 도서대여점에서 빌린 거야. 너도 같이 갈래? 거기 새로 나온 인기 만화가 얼마나 많다고.”

은혜까지 나서서 대여점 홍보를 하자 책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민희도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신간 만화도 있단 말이지? 거기가 어딘데?”

마침 정원이가 책을 돌려주는 날이라고 해서, 두 아이는 수업이 끝나는 대로 도서대여점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가람아파트에서 얼마 멀지 않은 3층짜리 낡은 상가는 민희도 자주 오던 곳입니다. 상가 입구로 들어서면서 민희는 이상한 듯이 두리번거렸습니다.

“어? 이 상가에 도서대여점이 있었나?”

“이층인데다 구석진 곳이어서 눈에 잘 안 띄어. 우리 엄마가 그 대여점 단골이어서 엄마 책 심부름하다 그만 나도 단골이 된 거야.”

“내게도 진작 알려주지. 너희들이 갑자기 책벌레로 변해버리는 바람에 나 혼자 얼마나 심심했다고…”

이층 계단을 다 오르자 정원이가 가리키는 오른쪽 맨 끝 구석진 곳에 ‹온누리 책 대여점› 이라고 씌어있는 문이 보였습니다.

정원이가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가며 큰소리로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민희도 뒤따라 들어가면서 가게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대여점 안은 사방이 책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느 도서대여점과 달리 불빛이 매우 밝고, 여기저기 화분들이 놓여져 있었는데, 대부분 잎이 넓고 키 큰 식물들이었습니다.

대여점 안쪽에 청바지를 입은 언니가, 손님들이 아무렇게나 놓고 간 책들을 책장에 꽂고 있다 정원이가 인사를 하자 반갑게 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민희는 너무나 놀라 후다닥 정원이 뒤에 숨었습니다.

그 언니의 얼굴이 이상하게 뒤틀려 있었던 것입니다.

“저~엉원이 와앗구나?”

언니가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힘겹게 말을 하자 얼굴 근육은 더 심하게 일그러졌습니다. 책을 들지 않은 한쪽 팔도 뒤틀려 있었고 앞으로 걸어오는 다리 역시 휘고 힘이 없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을 휘휘 내저었습니다.

민희는 그만 저도 모르게 ‘나, 난 갈래.’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다닥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뒤에서 정원이가 ‘민희야!’ 하고 부르는 소리와 ‘치, 치잉구니? 왜 그냐앙 가?’하는 그 언니의 말까지 들으면서도 민희는 달아나듯 계단을 뛰어 내려와 버렸습니다.

<작은 세상>의 작가 최현숙은 첫돌 지나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대학원을 졸업하며 시를 접었다가 2002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2005년 구상솟대문학상 본상(시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동화작가·콘티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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