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기호나 취향을 양보하거나 포기할 때가 많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높은 계단과 턱 같은 물리적 장벽 때문에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택권을 빼앗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 시시때때로 부딪치게 되는 곳이 바로 식당이다. 무엇보다도 식당은 기호와 취향이 우선시되어야 하는데, 장애인들에게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정작 식당 입구에 높은 턱이 없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얼마 전, 신년 모임 때 식당을 찾아 두 시간을 헤맸다. 모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기호대로,메뉴대로, 먹고 싶은 욕구에 배고픈 줄도 모르고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높은 턱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점점 시장기가 돌아서 더 이상 찾아나서는 걸 그만두고야 말았다. 결국 기호를 포기한 채 경사로가 있는 식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주 가는 단골집이 있긴 하다. 장애인들에게 단골집이란 취향보다는 턱이 없거나 경사로가 있어서 편의에 따라 갈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 대부분이다.

이제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처럼 배고픔만을 해결하러 식당을 찾지는 않는다. 장애인들도 좋은 만남, 정보 교환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식당을 찾는다.

매시간 비장애인에게 수없이 주어지는 기호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장애인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존중하고 인식한다면 적어도 장애인들에게 이러한 의식을 강요하지 않을 거다.

“바쁜 점심시간에는 식당에 가지 않아야 한다.”

“복잡한 출퇴근 시간에는 외출을 하면 안 된다.”

장애인이 일상 속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야말로 자기 결정권의 출발인 셈이다.

“커피를 마실까, 차를 마실까?”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참으로 흔한 말이다.

반면에 이 말 속에 일상에서 수없이 주어지는 선택권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1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특수학교에서 공부하게 됐고 국문학을 전공해 시를 쓰게 됐다. 솟대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하고 시창작동아리 ‘버팀목’ 을 창단해 시동인활동을 하고 있으며 ‘장애인이 나설 때’라는 사이트에서 스토리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 장애인들의 당당한 문화 찾기라는 취지로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여 ‘불꾼’이라는 장애인문화잡지를 창간했다. 열악한 지역 장애인 문화에 불을 지피고 싶은 바람으로 발행할 계획이다. 이런 소망을 담아 문화 사각지대에 있는 지방 장애인들의 일상을 통한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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