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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의 비애

누구나 제 나름의 일머리가 있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7-02-21 04:08:00
누구에게나 그러하겠지만 자기가 하고픈 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더구나 그에 심취해서 보람을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장래 하고픈 일을 물으면 다 다릅니다. 바라고, 이루고 싶어서 매달리고 싶은 대상이 너무 많습니다.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 좋습니다. 가능성을 갖고 있기에 스스로의 재능을 갈고 닦으면 어느 것 하나 다가 설 수 없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바람이 크면 클수록 챙겨볼 수 있는 열매 또한 크겠지요.

아이들의 소망을 날마다 바뀝니다. 어제오늘 다르고, 내일 만나는 그들의 바람 또한 곁가지 붙어서 새로운 싹으로 빼곡하게 돋아납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커서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근데 녀석들, 병아리 마냥 노랑부리를 들이대며 두 손 다 꼽아도 모자랄 만큼 일들을 쏟아냅니다.

그렇지만 요즘 아이들, 예전처럼 판·검사나 변호사, 의사, 사장이 되겠다 거나, 대통령, 장관, 정치가, 장군처럼 허황된 희망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관심 많습니다.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는 게 단연 최곱니다. 그밖에도 가수나, 탤런트, 영화배우, 모델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아나운서, 교사, 컴퓨터 게임 마니아 등을 선호합니다.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MP3, 인터넷을 한 붙이로 자주 대하기 때문일 겁니다. 정보통신 미디어의 근접성이 기성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성향을 보입니다. 아무튼 제 하고픈 일이 유다르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애서 권장할 만 합니다.

아이들의 바람을 함부로 겪어서는 안 됩니다. 어른의, 부모의 잣대로 아이들을 이끌어 가면 도리어 반발력만 크질 뿐입니다. 그것은 안 된다는 부정적인 낭패감을 안겨주는 것보다 무엇이든 해 보라는 허용적인 배려와 인정이야말로 아이들의 창의성과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는 든든한 바탕이 됩니다. 칭찬과 격려는 가소성(可塑性)을 일깨울 뿐만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높여 줍니다. 그렇지만 자라면서 왼손잡이였다는 것만으로 혹독한 핀잔을 받았습니다. 그 기억이 너무 아려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앙금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적인 얘깁니다. 단지 왼손잡이라고, 그것 하나만으로 서툴고 재빠르지 못하다고 집안에서나 학교에서 구박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은 어느 손을 쓰든 제재하려들지 않지만 그땐 왜 그랬던지 또래들마저 `왼쪽 잽이`라고 별명까지 불러대며 놀잇감 삼았습니다. 팽이 치거나 자치기, 칼과 가위를 잡거나 낫으로 풀을 벨 때도 항상 주눅 들어 먼발치에 물러나서 해야만 했습니다. `왕따`가 된 겁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농번기에 모를 심을 때는 정말 부엌의 부지깽이도 일손 거든다고 하지만 왼손잡이의 비애를 맛보아야했던 저는 그 틈에 끼어들지 못하고 잔심부름만으로 만족해야했습니다.

그러한 고정관념은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얼마 전에 고향에서 비닐하우스로 고추며 오이를 재배하고 있는 사촌 동생이 일 좀 거들어 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내달아 갔지요. 대충 설명하더니 한 줄 안겨주며 고추를 따라는 겁니다. 그래서 콧노래 흥얼대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뒷덜미에 와락 야단이 떨어졌습니다. 다른 일꾼들과 고추 따며 나아가는 방향이 틀려 일손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었지요. 다른 사람들 일하는 요량을 보니 그러했습니다. 미안해서 머쓱해 있는데 이번에는 고추를 골라 담으라고 합니다. 근데 이번에도 아줌마들이 선별해 놓은 고추 꼭지와 방향이 다르게 놓았다고 면박을 줍니다. 이래저래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손 탈탈 털고 나앉았으려니 심부름을 시킵니다. 가게에 가서 냉수를 사와라, 점심 가지고 와라, 수건 가져와라, 종이 박스 가져와라…. 정말 무엇 하나 옳게 거들게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지청구를 받아도 담담히 견뎌낼 수밖에 다른 노릇이 없었습니다.

또 한번은 오이를 따는데 도와주라고 연락이 왔기에 설마 그것쯤은 못하랴 싶어서 다가들었습니다. 상품 가치가 있는 것은 손바닥만한 크기로 곧은 것만 가위로 따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왼손으로 가위질하는 게 힘들었지만 별 것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손바닥 대보고 싹둑 잘라 제법 많이 땄다고 으슥했는데, 사촌 동생 내외 혀를 끌끌 찼습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나 몰라 미안해하는데 길이만 손바닥만하면 무엇하나 하는 거였습니다. 굵기 또한 위아래가 비슷해야 한다나요. 일머리가 없으면 입 뒀다 뭐 하느냐고 들들 볶아댔습니다. 보기 좋게 일꾼들 틈에서 밀려났습니다. 사람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여기저기서 히득거리는 웃음이 고약했습니다.

그래도 일손이 부족한지 다른 일을 시켰습니다. 산처럼 쌓아 놓은 `오이를 깨끗이 다듬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만은 쉬워 보였습니다. 그래도 편안하게 퍼질고 앉아 면 장갑 낀 채 송송하게 돋은 여린 가시 싹싹 비벼내고 끝자락에 붙은 노란 꽃잎마저 죄다 훑어버렸죠. 상큼한 오이냄새를 맡으며 재미있었습니다. 열 상자 정도 가지런하게 정리했기에 칭찬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애써 따놓은 오이를 다 망쳤다는 것이었습니다. 꽃잎 따고 가시 발라버린 오이는 상품으로 내다 팔지 못한다고 야단을 쳤습니다. 화가 난 사촌 동생 일 안 도와줘도 되니까 말끔하게 장만한 오이 들고 가라고 어깨를 들이밀었습니다. 아, 그 황당함 말하여 무엇 하겠습니까. 석 삼 개월 동안 비싼 기름 때가며 자식 돌보듯 애지중지하며 키웠던 결실이 물거품으로 날아가 버렸으니…. 그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심하게 주눅이 들었습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 말고는 내세울 일이 없다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곰이 재주넘듯 제각각 제 할 일은 있나 봅니다. 어렸을 때부터 왼손잡이로 일손 못된다고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지만, 선생으로 아이를 가르치는 데는 왼손잡이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아이들을 마주보며 오른쪽을 가리킬 때 저는 그냥 왼손으로 지칭하면 됩니다. 오른 잡이 선생님들은 그리 쉽지 않을 겁니다. 가끔 헷갈릴 때가 잇습니다. 선생님이 오른손을 든 채 오른손 해 보세요. 초등학교 아이들은 왼손을 들고 따라합니다. 교사는 언제나 아이들 쪽을 생각해서 얘기해야 하거든요. 칠판에 글을 쓸 때도 왼손잡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씁니다. 결코 아이들에게 선생의 뒷모습을 보이며 서지 않습니다. 운동장 수업 때나 율동을 가르칠 때도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그냥 왼발만 내딛으면 아이들은 오른발부터 따라하거든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결코 왼손잡이로서의 비애를 느끼지 않습니다. 교사로 사는 것이 운명적인가 봅니다.

통계적으로 보아 전 인구의 십분의 일은 왼손잡이라고 합니다. 저희 반에도 네 명의 아이가 왼손잡입니다. 그들 모두 또래 아이들과 어느 것 하나 뒤지는 게 없습니다. 잘 챙겨 합니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면박을 주거나 닦달하는 것은 타고난 아이의 재능을 짓뭉개는 가혹한 일입니다. 부모가, 선생님이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말 한 마디가 아이에게 평생 동안 아픔이 되고 못이 되어 주눅 들게 합니다. 당장에 부족하고 미적거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어주고 느긋하게 기다릴 알아야 합니다. 아이가 하고 싶다고 매달리는 일을 북돋워주고, 인정하며, 끝까지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하는 요량을 보아 쓸데없는 짓이더라도 격려와 칭찬으로 버팀목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 같지만 다 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의 가능성을 좋게 믿어야 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아무리 지독한 왼손잡이라도 제 구실하며 삽니다. 살면서 이뤄낼 수 있는 가능성은 무한하기 때문이지요.

칼럼니스트 박종국 칼럼니스트 박종국블로그 (jongkuk6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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