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은 과연 뭘까?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단어는 우리나라엔 없었다. 오직 재활만이 살길이었고 재활이 안 되는 장애인들은 쓰레기처럼 시설에 버려져야 했고 오래된 장롱 속에 처 밖아 둔 고장 난 재봉틀처럼 골방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야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중증장애인들의 삶의 환경도 변하고 있다. 며칠 전,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거북이와 달팽이가 5m거리를 놓고 경주를 하는 모습을 봤다. 물론 거북이가 이겼다. 두어 시간 만에 들어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 반면 달팽이는 하루 종일이 걸려서 들어왔다. 언뜻 보면 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주 천천히 그리고 줄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처럼 중증장애인들의 삶의 환경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줄기차게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움직임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사회의 중증장애인들은 여전히 교육에서, 노동의 현장에서 차별과 소외당하고 있으며 대다수 장애인들은 골방과 시설에서 죄수처럼 살고 있다. 그런데도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장애인 자립생활이란 이론(또는 패러다임)이 어떤 의도로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땅에 들어왔는지는 얘기하지 않겠다. 이 칼럼을 보시는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리라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얘기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아이엘(IL)이라 일컬어지는 자립생활이 이 땅에 들어왔고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수만도 전국적으로 50개가 넘게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마치 달팽이의 움직임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10년 동안 줄기차게….

그런데 과연 올바로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자립생활 4년차다. 4년 전 우연치 않게 자립생활을 공부하며(모 대학의 자립생활지도자대학 과정에 응시해서 운 좋게 합격해서) 시설을 나왔고 자립생활센터 체험홈을 거쳐 센터 상근활동가로, 지금은 진보정당의 상근활동가로 여러 가지 장애인자립생활 운동(이동권 투쟁, 장차법, 교육지원법, 활보 투쟁, 시설비리척결 운동 등)에 관여하며 자립생활을 하고 있지만 난 아직도 자립생활이 뭔지 모르겠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자립생활은 과연 뭘까?

장애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또 비장애인들에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걸까?

그리고 처음 교수와 학자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 땅에 자립생활을 전파한 것일까?

그래서 지금, 자립생활이 제대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고쳐가야 하는 것일까?

고백하건데 난 학식이 많거나 똑똑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4년간의 사회경험과 그 경험들을 통하여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사회현상들을 체험하며 살아온 얘기들을 자립생활과 결부하여 쓸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이야기로 활보투쟁의 경험들을 적었다. 투쟁 속보 형식이었지만 앞으로 나는 이 공간에서 자립생활과 관련된 많은 질문들을 독자들에게 던질 것이다. 지금의 자립생활, 뭔지 모르겠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이나 골방에서 자립생활이 뭔지 활동보조인서비스가 뭔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박정혁 칼럼리스트
현재 하고 있는 인권강사 활동을 위주로 글을 쓰려고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며 느꼈던 점, 소통에 대해서도 말해볼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애인자립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들과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융화되기 위한 환경을 바꾸는데 필요한 고민들을 함께 글을 통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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