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장애인 김선심씨는 삭발을 하고난 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에이블뉴스>

24인의 중증장애인이 삭발을 했다. 25인의 중증장애인이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하고 단식에 들어간 지 8일 만에 일이다. 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우리는 삭발을 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고 간간히 눈발도 날렸다. 바리캉 톱날에 밀린 머리칼은 사정없이 낙화하였고 깎여나간 여성장애인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중증장애인인 우리들에게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화가 무엇이기에 죽음도 불사한 단식과 애지중지 아끼던 머리칼을 미련 없이 날려 보낼 수 있었을까? 앞으로 시행될 보건복지부의 활동보조인서비스 사업지침이 무엇이 문제이기에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그토록 분노하며 들고 일어나는 것일까?

중중장애인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나는 부모님과 같이 살며 자립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보건복지부 사업지침 그대로 시행되면 난 더 이상 활보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 우리 집은 차상위 200%가 넘기 때문이다. 심한장애로 인해 작년까지 하루 10시간씩 이용해 왔는데 올해는 시간도 턱없이 모자라거니와 자부담 할 돈도 나에겐 없다. 부모님이 맞벌이 하셔서 우리 네 가족 겨우 살고 있는데 지금껏 천덕꾸러기로 살아온 내가 또 다시 부모님에게 손 벌리란 말인가?

그동안 활보서비스를 이용해 야학에 다니며 검정고시 패스도 했는데…. 올해부터 활보서비스가 제도화 되면 취직도 하고 돈도 벌고 싶었는데…. 그래서 거리로 나가 열심히 투쟁하고 그랬는데…. 이젠 더 이상 집안에 천덕꾸러기로 갇혀서 살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 이 나라는 장애인 문제를 모두 장애인 당사자 가족들에게만 책임 지우려 하는가? 차라리 나더러 죽으라고 해라.”(대상제한 때문에 더 이상 활보서비스를 이용 못하는 어느 중증장애인)

“우리는 중증장애인 부부다. 우리는 4년 전 시설을 나와서 3년 전에 결혼해 지역사회에 집을 얻어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복지부의 사업지침은 한마디로 우리부부에게 부부생활을 포기하고 시설로 도로 들어가란 얘기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한 달 80시간, 그러니까 하루 2시간 반 가지고는 도저히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밥조차도 혼자 먹지 못하는 몸이다. 더군다나 아내는 일주일에 두 번 관장을 해야 한다. 한 번 관장하면 두 시간이다. 결국 그날은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침대에서 휠체어에 앉기, 씻기, 양치질, 식사, 목욕, 청소, 빨래 등 모든 일상생활과 가정 일을 활보의 손을 빌려서 해야 하는데 그것들을 모두 2시간 반 만에 마칠 수 있을까? 저녁 때는 또 어떻게 하란 말인가? 우리더러 점심, 저녁도 먹지 말고 휠체어에 앉아서 그대로 자란 말인가? 거기다 자부담은 또 뭔가? 기초생활 수급비 쥐꼬리만큼 주면서 그것으로 생활하기도 빡빡한데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그 돈에서 또 빼내란 얘긴가? 참 너무한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시설엔 안 간다.”(상한시간 때문에 곤란을 겪는 어느 중증장애인 부부)

'차별에 저항하라'는 글귀를 디자인 삼은 무대 앞에서 삭발자들. <에이블뉴스>

보건복지부는 자부담의 문제를 자립생활의 자기결정권과 결부시켜 얘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괴변이다. 우리는 작년 한해 활보서비스 제도화를 권리로서, 중증장애인들의 생존권으로 요구하며 투쟁했었다. 그러므로 활보서비스는 자립생활을 논하기 이전에 집안 갇혀서 또는 시설에 수용되어 희망 없이 살아가는 이 시대의 중증장애인들에게 다시 한 가닥 삶의 희망을 되찾아 줄 수 있는 생존의 권리였다.

한없이 떨어진 우리들의 마이너스(-) 인생을 활보서비스는 영(0)으로 끌어올려 시작점을 만드는 제도로서 요구였다. 그런 요구였는데 누군가가 자립생활을 끼워 붙였다. 물론 자립생활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활보서비스도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요구는 중증장애인들의 보편적인 권리로서의 활보서비스제도를 얘기하였다.

이 얘기는 중증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하고 있든 안하고 있든 상관없이 활보서비스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이면 누구나 권리로 사용하게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자부담을 얘기하기 이전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중증장애인들의 현실을 먼저 봐야 하는 게 옳은 것 아닌가 보건복지부에 묻고 싶다. 교육에서 제외되었고 일자리도 구할 수 없다. 지역사회와 고립된 채 한 달에 한 번도 외출하기 힘든 이 땅의 중증장애인들의 현실이다.

삭발은 결사항전의 의지를 나타낸다. 중증장애인들이 단식을 하고 삭발을 했는데도 이 나라 사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무슨 똥고집인가? 무엇을 더 비우고 버려야 할까? 나는 삭발을 하고 난 뒤 투쟁발언에서 지금 보건복지부에서 하려고 하는 것은 짝퉁 활보서비스라고 규정했다. 우리나라는 부자나라들만 가입한다는 OECD가입 국가다. 그런 나라에서 시작부터 짝퉁 활보서비스를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쪽팔리지도 않는가?

종이상자로 만들어 검은 천을 씌운 보건복지부와 상자에 담긴 우리들의 머리칼을 태우면서 뜨거운 불길과 매캐한 연기가 하늘로 오르며 답답한 마음이 가슴을 짓누른다.

[리플합시다]2007년 황금돼지해, 장애인들의 소망은 무엇인가?

박정혁 칼럼리스트
현재 하고 있는 인권강사 활동을 위주로 글을 쓰려고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며 느꼈던 점, 소통에 대해서도 말해볼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애인자립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들과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융화되기 위한 환경을 바꾸는데 필요한 고민들을 함께 글을 통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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