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어렸을 때 가족 어른 중의 누군가가 내 언니에게 이런 말을 했다.(당시 언니는 초등학생이었다.) ‘너 안경 쓰면 이다음에 시집도 못 가!’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안경에 대한 나의 편견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여자는 안경 쓰면 못쓴다는 말도 안 돼는 편견이 팽배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다가 안경 쓴 사람 자체에 대한 편견도 만만치 않아서 그가 남성이라 할지라도 안 좋은 말로 비아냥거릴 때 ‘안경제비’라는 표현을 썼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듯 안경에 대한 편견 속에서 나는 안경이라는 물건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물건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세상이 달라지고 사회적 편견에 반하는 의식이 싹텄어도 안경에 대한 나의 편견은 잠재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눈이 별로 안 좋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안경을 써서 시력을 교정한다는 것을 나는 상상도 못했다. 어릴 때 엄마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저 몸에 눈까지 안 좋으면 어떡하겠냐?’고…. 안경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더불어 그러한 말은 내게 안경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우리 가족들도 내가 시력이 안 좋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 부분은 매우 자연스럽게 외면 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겉으로 보여 지는 부자연스러움은 이미 내가 갖고 있는 신체적 장애만으로도 충분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나 역시 그 외면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시력이 좀 떨어진다고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다지 심각할 정도는 당연히 아니라고 여겼다. 왜냐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얼마 전 우리 아이를 데리고 안과를 찾았다. 우리 아이는 신체검사를 하면 항상 ‘시력의 교정을 요함’이라고 나온다. 검사를 해보니 우리 애는 난시로 나왔다. 난시는 중간에 없어지거나 하는 것이 아니기에 어렸을 때 안경을 써서 교정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가 난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증세를 말해주는데 듣고 있자니 왠지 내가 해당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난생처음으로 시력검사를 받았다. 혹시나 했는데 내가 바로 난시로 나왔다. 특히 오른쪽 눈은 큰 물체만 알아볼 수 있을 뿐, 글씨는 아무리 커도 식별이 불가능한 약시 수준이었다. 그래서 오른쪽 눈은 0.1도 채 안되는 거의 마이너스의 시력이었고 왼쪽 눈은 0.7로써 지금까지 왼쪽 눈으로만 보고 살아온 셈이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 진작 발견했으면 더 나빠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얘기였다.. 순간 울컥 설움이 밀려왔다. 40년 만에 내 눈의 심각성을 비로소 알다니…. 나의 시력을 외면당하며 살아온 시간들, 그 외면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외면했던 나…. 그러한 모든 것들이 순간, 너무 아프게 느껴졌다. 아이의 눈 상태를 알려다가 내 눈 상태를 알게 되었으니…. 나도 아이랑 똑같이 안경을 맞쳐서 착용하였다. 난생 처음 써보는 안경!! 아이랑 나란히 안경점을 나오는데, 안경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도 달라보였다. 선명하고 확실한 세상!! 지금껏 내가 보며 살아온 흐릿한 세상과는 차원이 달랐다. 난 비로서 깨달았다. 내 마음의 눈도 그렇게 흐렸었다는 것을…. 난 내 아이가 안경을 써야 한다는 자체도 상당히 주저하였다. 안 써도 크면 좋아질 수 있다는 주변의 얘기를 들으며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상당히 주저하였다. 도대체 아이가 안경 좀 쓰면 어때서 그 주변의 고정관념에 나도 그처럼 사로잡혀 있었단 말인가? 내가 휠체어를 타야 밖에 나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안경을 통해 세상을 시원하게 보게 해주면 되는 것을…. 뒤늦게 내 시력을 알게 된 나 역시 그 편견의 피해자였던 것이고 또한 내 아이를 나처럼 피해자가 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교정시력은 1.0이었지만 나는 오른쪽 눈 상태가 너무 안 좋아 교정시력을 해도 0.6밖에 나오지 않는단다. 아이에 비해 훨씬 심각한 양상을 띄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장애인들은, 그 중에서도 장애여성들은 신체적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가족이나 주변으로부터 다른 부분들의 애로사항은 외면 된 채 살아가고 있다. 나 스스로가 그 편견의 안경을 벗어던져야만 한다. 주변이 나를 외면함으로 인해 나도 나를 외면하는 이 악순환을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얘, 안경을 쓰니까 왜 이렇게 세상이 선명하니? 너도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니?” 그러자 아이가 하는 말, “엄마, 엄마는 그래봤자 교정시력 0.6 밖에 안돼요. 0.6이면 내가 안경 벗었을 때 시력인데 뭐 그거 갖고 그래요? 엄마가 지금 그렇게 잘 보이는 것도 아니예요.” 난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게는 0.6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처음 느껴보는 선명함인 것을…. 내가 남편에게 내 눈 상태를 얘기하자 남편이 무척 마음 아파했다. 그이도 내가 어렸을 때눈 검사를 받아보지 못한 현실이 못내 가슴 아팠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난시라는 것도, 시력이 그렇게 낮다는 것도 어떻게 40년 만에 알게 됐을까?”

그러자 전맹의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우리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난 여지껏 내 시력이 얼만지도 몰라.” 그의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우리 아이와 나는 가끔 우리 식구 중에 제일 눈이 좋은 사람은 아빠라고 얘기한다. 왜냐면 우리 남편은 나와 아이가 못 찾는 물건을 그의 놀라운 감각으로 찾아낼 때가 있고 마치 보이는 사람처럼 말할 때도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 모녀는 아빠의 시력이야말로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좋다고 얘기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모녀는 안경을 썼지만 그는 안경을 안 썼으니 제일 좋다고 얘기할 수밖에…. ^^ 나는 안경을 통해 얄팍하기 그지없는 나의 편견을 벗었다. 그리고 아이 얘기처럼 썩 좋은 건 아니지만 0.6이라는 새로운 시력을 찾았다. 비록 눈의 시력은 0.6이지만 생각의 시력은 1.6정도로 상승한 것 같다. 또 하나의 경험은 이처럼 나의 의식세계에 새로움을 선사하였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는 분위기와 가정이나 사회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것에 반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여성주의적인 의식이 싹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녀 차별은 비장애여성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여성들은 비장애여성들이 겪는 차별보다 더한 몇 배의 차별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인 문제는 그 장애인이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 그 양상이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남아선호사상과 전근대적인 남존여비사상은 장애여성들에게 더 할 수 없는 억압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장애여성들은 가정에서부터 소외되고 무시되고 그 존재가치를 상실당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여성도 이 땅에 당당한 여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단순한 여성주의자가 아닙니다. 저는 이 땅에 당당히 살아 숨쉬는 장애여성주의자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장애여성주의적인 언어로서 표현하고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진정한 장애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 전반적인 장애인의 문제와 여성에 대한 문제도 함께 엮어나가겠습니다. 저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제도와 틀을 거부하며 장애여성의 진정한 인권 실현을 위해 장애여성인권운동단체인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여성공감 홈페이지 http://www.wde.or.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