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에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피해 생존자들. ⓒ에이블뉴스DB

시설수용은 장애인권리협약에서 천명한 권리를 다중으로 위반한 것이며, 복지서비스가 아닌 감금으로 봐야 한다고 지난번에 얘기했다. 관련해 시설의 인권침해 가중 요인으로 유의미한 보상 거부, 시설 거주 기간, 강제치료, 또는 기타 폭력, 학대, 비인도적이고 품위를 손상시키는 요건 등이 포함된다고 가이드라인 115항에 나와 있다.

시설수용자, 시설거주인에 대한 유의미한 보상의 실질적 거부가 현실이기에, 위원회에선 시설 인권침해 관련 진상규명 및 배상과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가이드라인 118항에는 보상 메커니즘은 장애인 시설수용으로 인한 모든 형태의 인권침해를 인정하고, 보상과 배상은 지속적인, 결과적, 교차적 위해를 포함해 시설수용 동안과 탈시설 후에 입은 인권침해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가이드라인 119항에선 당사국이 시설수용을 경험한 장애인을 대표하는 모든 단체와 협상하고, 시설수용 생존자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제도 도입과 생존자의 사회 내 지위 증진 위한 추가적 교육, 역사 및 기타 문화적 조치를 제공하며, 시설수용의 결과로 인한 고통·어려움, 이에 따르는 피해 보상 수준에서 시설수용인에게 자동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런 재정 보상이 개인의 소송 제기와 다른 형태의 정의에 접근할 법적 권리도 훼손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또한, 120항에선 배상금은 보상, 가활, 재활을 포함한 재정 보상을 뛰어넘어야 하며, 시설수용인 등이 지역사회 내 확립 지원을 위한 법적, 사회적 서비스와 시설수용으로 인한 피해 복구를 위해 건강 서비스, 치유과정 비롯한 모든 권리 보장이 포함됨을 밝혔다. 장애에 기반한 구금 및 시설수용 등의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 법을 제정하고, 시설수용인 등의 개인 요구와 이들이 경험한 손실/박탈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의 회복, 가활 및 재활을 지원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121항에선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통해 모든 종류의 시설수용이 과거와 현재 생존자에게 미치는 위해에 대한 공공인식 증진 및 조사 진행과 장애인 시설수용 제도 유지의 역사적 정책에 담긴 사회적 해악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122항에선 시설수용에서 생존한 사람들을 위한 모든 구제는 장애인, 특히 시설수용 생존자와 협의하고 이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설계·시행돼야 하며 보상·배상 체계가 시설수용 생존자의 의지와 선호를 존중하고, 그런 체계와 과정에서 권위 또는 전문가 지위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123항에선 당사국이 시설수용 생존자들에 대한 보복을 막야야 한다고도 돼 있다.

이 조항들을 읽으며, 염전노예 사건 때 체불된 임금을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상 집행유예로 형을 낮췄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염전노예 피해자들은 단순 임금체불 이상으로 강제노역, 인신매매 폭행 등의 종합판 인권유린을 당한 터라 재정 보상만 한다는 것은 염전노예 피해자에겐 제대로 된 보상이 아니라 오히려 제2, 제3의 염전노예만을 부추길 뿐이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난 2021년 12월 29일 오후 2시 대구 동구청 앞에서 ‘청암재단 인권침해시설 문제해결’ 전국 결의대회를 개최한 모습. ⓒ에이블뉴스DB

시설거주인이나 시설수용 생존자들 경우는 염전노예와 형태가 다를진 모르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이 박탈된 채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고, 여기에 반항하면 폭력을 당하는 등의 인권유린이 있는 본질은 비슷하다고 본다. 실제로 시설에서 지적장애인 등의 장애인들이 훈육이란 명목하에 폭력을 당하고 있고 이게 만연한 현실이 지상파나 SNS 등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폭력이 아니더라도, 폭언 등의 정서적 학대를 시설에서 살아온 기간 동안 받은 경우도 많은 등, 시설수용 생존자와 시설거주인에게 심리적 지원 등을 이들의 욕구, 의지, 선호, 그리고 삶의 질을 존중하며 지원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본다. 이 점은 가이드라인 118번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고도 본다.

심지어 이들은 장애인연금, 장애수당 등도 횡령당하기까지 하는 등 경제적 주권도 박탈당한다. 이런 정황들을 종합했을 때 시설수용 생존자들과 시설거주인에 대한 배상과 보상이 재정적 보상을 뛰어넘어야 하는 건 지극히 상식적이다.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시설수용 해악에 대한 공공인식을 증진하며 배상·보상에 대한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탈시설 가이드라인에서 얘기하려는 또 하나의 지점임을 생각하면, 탈시설은 시설수용 생존자와 시설거주인 등이 인간으로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위한 하나의 외침이라는 생각마저 다시금 든다. 이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절차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시설수용에서 생존한 모든 사람의 구제는 특히 시설수용 생존자와 협의하고 이들의 참여를 보장한 상태에서 설계·시행돼야 한다는 122항도 눈여겨볼 만하다. 시설수용 장애인의 대부분은 지적장애인이고, 이들의 정책사회 참여는 배제돼 있다. 따라서 공공의사결정 시 지적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단체의 의미 있는 참여를 보장하라는 이번 UN 장애인권리위원회의 2·3차 권고사항을 정부는 이행해야 할 것이다.

탈시설 과정 모니터링의 내용도 눈여겨볼 만하다. 129항에 보면, 모니터링 체계는 인권침해를 식별, 예방 및 구제하고 모범 사례에 근거해 권고를 제공해야 하며, 독립 모니터링 체계에 대한 위원회의 지침에 따라 협약 제33조에 명시된 모든 범위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130항에 보면 모니터링 기구는 장애인, 특히 여전히 시설에 있거나 시설수용 생존자 및 대표단체들의 의미 있는 참여 보장을 포함한 인권 모니터링 원칙을 준수해야 하고, 국가 차원의 예방 기구, 국가 인권 기관 등의 탈시설 모니터링 활동 시 시설 직원은 제외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131항에선 시민사회와 장애인대표단체가 수행하는 독립적 모니터링 활동을 촉진하고, 132항에선 모든 모니터링 기구는 공공 및 민간 시설 내 환경과 인권침해 현황을 자유롭게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133항에선 독립 모니터링을 통해 확인된 방법으로 인권침해를 적시에 효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인권지킴이 지원센터가 인권지킴이단 운영을 지원한다고 홍보하는 그림.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인권지킴이지원센터

우리나라에선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장애인의 인권침해 예방과 인권침해가 발생될 시 확인과 필요한 조치를 통해 이용인의 인권이 보장되도록 할 목적으로 거주시설 내 인권지킴이단이라는 모니터링 기구를 설치·운영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시설장이 인권지킴이단원을 직접 위촉하게 되어 있기에 시설 내 인권침해 모니터링은 독립성을 상실해 인권침해를 막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관할 지자체장이 지역 장애인인권위원회나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등의 추천을 받아 인권지킴이단을 직접 위촉하도록 하는 등 시설과는 독립적인 탈시설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는 것이 정부의 과제가 될 것이다. 이 과제는 사실 오래전부터 얘기해온 것이지만 아직도 실행되지 않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이를 이행할 때 인권침해를 적시에 효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133번의 내용은 현실이 될 것이며, 독립적 탈시설 모니터링은 137항 내용처럼 모든 종류의 시설이 폐쇄될 때까지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팬더믹 등의 긴급상황에서도 모니터링 과정은 진행돼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104항에선 시설을 떠나는 장애인이 고용에 있어 동등한 조건으로 접근 가능해야 하며 보호되거나 분리된 고용은 금지한다는 내용이 있다. 105항에는 시설을 떠나는 사람들이 노숙·가난의 위험에 처할 수 있으니, 강력한 사회보장체계를 제공하되 장애와 관련된 비용에 대한 지원이 포함되고, 사회보장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치료 조건, 고용 관련 자격조건에 얽매여선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106항에선 시설을 떠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역량 증진은 물론 평생교육, 완전한 학교 교육과 고등교육에 참여할 기회를 포함해 통합교육에 접근해 분리정책과 시설화를 방지해야 하되 이들의 의지와 선호에 따라 학습을 추진하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보호고용 형태 등의 고용이나 분리교육, 장애와 관련된 충분한 비용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것 등은 장애의 의료적 모델이 지배하는 사회이기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지금부터라도 장애의 의료적 모델을 폐기하고 인권적 모델이 지배하는 사회로 가기 위한 국가의 행동계획을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럴 때 104~106번 조항의 실현이 가능해져 시설을 떠나는 사람들의 권익옹호 일환이 될 거라 생각한다. 이외에도 이들의 권익옹호과 관련해 여러 조항이 있지만, 내용이 조금은 길어 지면상 생략하기로 한다.

재정 보상 이상 차원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보상과 배상을 하고, 시설과 독립적인 탈시설 모니터링 등의 권익옹호 과정 등을 거칠 때 진정한 탈시설을 위한 길로 갈 수 있음을 다시금 명심해야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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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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