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에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되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되고 난 뒤, 내가 혼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가 난생 처음 겪게 된 휠체어 생활은 다치기 전과는 180도 다른 삶이었다. 새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체적인 모든 것을 새로 배우고 연습해야 했으니까. 비장애인은 신경을 쓸 필요도 없는 자연스러운 기본 일상생활 그 자체가, 나에게는 넘어야 할 난관이었다.

제일 기본적인 용변 처리 역시 혼자 하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걸렸었다. 샤워를 하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욕창 치료를 하는 것도, 혼자만의 방법을 찾기까지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난생 처음 겪게 된 휠체어 생활은 너무 힘들었다. ⓒPxHere

하지만 무엇이든 단번에 되기보다 서서히 조금씩 하게 되는 게 순리임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부딪치고 넘어졌다. 혼자서는 절대 못 할 것 같은 일들도 처음 한두 번이 어렵고 힘들지, 횟수가 거듭될수록 나만의 노하우가 생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남들은 용변, 샤워, 옷 입기 같은 걸 해냈다고 박수까지 칠 일은 없을 것이다. 아기가 했다면 모를까.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작은 일을 혼자 하나씩 했을 때, 박수를 칠 만한 일이었다. 자신감과 성취감이 커졌고, 자부심까지도 생겼던 것 같다.

그렇게 29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조금씩 조금씩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다. 지금은 혼자 못 할 게 거의 없을 정도로 생활에 적응이 되어 있다. 물론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이 좀 들지만, 내가 휠체어를 타서 못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휠체어 타고도 못 할건 없다. 작년 울릉도 여행 중. ⓒ박혜정

어릴 때부터 여행을 많이 데리고 다녀주셨던 부모님 덕분에 나는 여행이 진짜 너무 좋다. 그런데다 대학 입학 후, 거동이 불편한 나에게 부모님은 빚을 내어 차를 사 주시며 날개를 달아주셨다. 차를 타고 어디든 시간과 돈이 생기면 돌아다니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님께 받는 한 달 용돈 20만원으로는 돌아다니기에 턱도 없었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여행을 가기 위해 나는 돈이 늘 필요했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고도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아보았다. 대구 동성로 시내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설문지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아파트 집집마다 벨을 눌러 방문 판매 영업도 했었다. 교통량 조사 아르바이트로 하루 종일 도로변에 휠체어 타고 앉아서 지나가는 차 대수를 세는 일, 중고 자동차 판매 딜러도 조금 해봤었다. 판매 영업은 수완이 없어서 별 성과는 없었다.

그 외에도 홈페이지 제작, 영-한 번역하기, 천리안에 접속해서 광고 글을 올리기, 자소서, 이력서 대필 아르바이트 등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든 그냥 했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에서 이근후 박사는 “무모하게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그냥 무모하더라도 도전하면 된다. 휠체어를 타고 무모해 보이더라도 막상 해보니 할 수 없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실패를 하더라도 해봤다는 생각에 오히려 자신감이 올라갈 뿐이었다!

처음, 하기 전에는 내가 이런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너무 된 게 사실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당시 나는 너무나 여행을 가고 싶은 욕구가 컸다. 그래서 무작정 '막상 해보면 할 수 있다!' 라는 젊은 패기로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교육회사 시절, 강의를 하던 필자의 모습. ⓒ박혜정

직장 생활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컴퓨터 전공이라 초반의 직장은 컴퓨터만 하면 되니까 일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그 뒤로 교육 회사에 근무하면서 내가 교육 진행을 할 수 있을까, 강의를 할 수 있을까 더 걱정했었다.

영어 학원 강사를 도대체 내가 할 수 있을지 너무나 망설여졌다. 초등, 중등 아이들 앞에 휠체어 타고 영어를 가르치는 내 모습이 초라하지 않을지 정말 두려웠었다.

휠체어를 타고 판서를 하고, 강의를 막상 해보니 별건 없었다. 강의를 듣는 어른도, 아이들도 처음에 어색해 했지만, 두 번째부터는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조금의 용기만 내서 막상 해보면 된다. 몇 번만 해보면 자신감이 생기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최근에 대학생들에게 특강을 했던 필자의 모습. ⓒ박혜정

20대 중반에 혼자 독립을 하면서 처음에는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등의 집안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두려웠었다. 부모님과 같이 있을 때는 그런 집안일을 할 기회도, 필요도 없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들었다.

그렇지만, 대신해줄 사람 없이 혼자니까 어떻게든 내가 해야 했다. 집안일도 막상 하니까 할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집안일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할 수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남들보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릴 수 있다. 조바심은 버려야 한다. 남들과의 비교는 절대 할 필요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만, 나의 속도로 하면 된다.

휠체어 타고 집안일 하기. ⓒ박혜정

휠체어를 타고 여자 혼자 해외를 여행하는 것도 내가 설마 할 수 있을 까 걱정만 했다. 우리나라도 아닌 정말 낯선 곳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데, 과연 내가 오롯이 혼자 여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눈 딱 감고, 용기 내어 한 번만 해보면 누구든 할 수 있다!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건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일단 하기만 하면, 할 수 있다!'고 마음 먹고, 첫 발만 내딛으면 분명히 누구나 할 수 있다. 나는 정말 확신한다.

휠체어를 타고 혼자 여행가서 찍은 셀카. ⓒ박혜정

내가 이 몸으로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을지 지레 겁먹었었다. 주변에 서도 힘들 것이다, 못 할 것이라고 의욕을 꺾는 말도 했다. 나도 그런 말을 듣고 첫째를 키우는 건 섣불리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들어도 ‘왜 내가 못 해!’라고 생각하고 막상 하면 할 수 있다. 둘째를 키우며 막상 하니까 휠체어를 타고도 나에게 맞는 육아 방법을 찾아서 할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연년생 육아. ⓒ박혜정

혹시 지금 두려움이 들어서 시도를 못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막상 해보면’이라는 마법의 말을 꼭 기억하라! 그리고 실행해 보길 바란다.

모든 일은 막상 해보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대부분이고, 막상 하면 누구든 할 수 있다. 또 막상 하기 시작하면, 당신이 가지고 있던 두려움과 불안은 신기하게도 바로 사라진다.

가슴 밑으로 몸의 2/3가 마비인 나 같은 사람도 하는데, 당신이 못 할 게 도대체 뭐가 있는가?

그냥 딱 한 번만 해보면 된다! 눈 딱 감고 하기만 하면 된다!

하고 싶은 그 어떤 일이라도 막상 해보면, 나도, 당신도, 그 누구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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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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