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본 협약 25조 e 항이 유보되고 있으나, 권리협약이 비준된 지 14년 만에 선택의정서 까지 비준이 된다면 비로써 권리협약에 대한 한국 정부의 완전한 비준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장애인의 완전한 권리실현을 위해 한 발짝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선택의정서에 핵심은 개인진정제도다. 장애와 관련한 차별이나 인권침해를 받으면 유엔의 진정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선택의정서가 비준된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유엔의 진정을 신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해야 할 선행조건은 모든 국내 법적 구제절차를 진행한 후에 최종적으로 유엔에 제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국내 법적 절차를 진행하고도 권리를 구제받지 못한 경우 유엔에 제소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그렇다면 현재 국내 장애인법률지원체계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장애인만을 위한 법률지원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도가니 사건이나 신안염전 노예 사건,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에 대한 저상버스 도입요구와 같은 장애 관련 이슈를 다루었던 사건에 대해 특정 장애인단체와 공익소송을 담당하는 법무법인 등이 연대하여 법적 구제절차를 받았던 사례가 있으나, 이는 개별적 사례에 대한 한정적인 지원이며, 공식적인 지원체계라고는 할 수 없다.

다른 방법이라면 법률구조공단에서 서민들을 대상으로 법률 상담을 비롯한 법적 절차를 지원해주는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장애인 관련 전문성이 부족하고 또한 장애인만을 전문적으로 지원해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장애인 관련 법적 구제절차에 대한 지원체계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장애인 관련 소송에도 적용되고 있는 패소자부담원칙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패소자부담원칙은 소송을 시작한 원고가 재판에서 패했을 경우 상대방 측에서 발생한 모든 비용을 패소한 원고가 전부 혹은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으로 몇몇 장애 관련 공익소송에서도 재판에서 패해 장애인 혹은 단체가 상대방 측의 비용에 대한 일부 혹은 전부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온 사례가 있다.

이에 따라 작게는 몇십만 원부터 몇천만 원까지 부담하라는 사례가 나와 장애인 관련 공익소송을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권리협약 선택의정서에 의한 개인진정을 하기 위해서 먼저 국내법에 따른 모든 구제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패소자부담원칙을 국내법절차를 거치지 못하게 하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수술은 고사하고 약도 먹어보지도 못한 채 사망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30년 전부터 공익소송 관련 패소자부담원칙 제외에 관한 논의가 있었고 장애인단체에서도 얼마 전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관심을 가지고는 있으나 뚜렷하게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권리협약 선택의정서가 실효성을 갖고 실질적으로 장애인의 권리구제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지적한 두 가지 사항이 먼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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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욱 칼럼리스트
‘우리나라 장애인이 살기 좋아졌다’고 많은 사람들은 얘기한다. ‘정말 그럴까?’ 이는 과거의 기준일 뿐, 현재는 아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맞게 장애인정책과 환경도 변해야 하지만, 이 변화에서 장애인은 늘 소외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 제기와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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